[나의 삶 나의 스포츠] “축구로 사내 원활한 소통 분위기 조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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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라인케 사장이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왼발 슛을 하고 있다. [사진=조진영 인턴기자]

1951년생이니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내일 모레가 환갑이다. 배도 넉넉하게 나왔다. 그런데도 공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슈팅은 골문 구석구석을 찌른다.

제약회사인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의 군터 라인케(58) 사장은 축구 선수 출신이다. 그는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2부(당시 명칭은 레기오날리가) 올덴부르크 팀에서 7년간 활약했다. 왼발을 잘 써 왼쪽 공격수로 뛴 그는 DFB-포칼(프로와 아마추어가 모두 출전하는 독일 축구대회)에서 차범근이 속한 프랑크푸르트와 맞붙기도 했다.

2006년 한국에 온 라인케 사장은 부임하자마자 사내에 ‘빅 풋’이라는 축구 동아리를 만들었다. 그는 구단주이자 감독이고, 가끔 선수로도 뛴다. 이 회사의 김성진 차장은 “사장님은 많이 뛰지는 않지만 상대 골문 앞에서 공을 잡으면 어김없이 골로 연결한다. 역시 선수 출신은 다르다”고 말했다.

라인케 사장은 사내 축구팀이 수평적인 조직문화와 열린 커뮤니케이션에 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한국인은 나이·선후배 등을 엄격하게 따지는 경향이 있어 업무에서도 윗사람에게 자신의 의견을 잘 제시하지 못한더군요. 그런데 함께 축구를 하면서 그런 게 많이 해소되고 있습니다. 축구를 할 때는 선배라서 패스하는 게 아니라 골 잘 넣는 선수한테 패스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라인케 사장은 축구를 통한 국제 교류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베링거인겔하임 본사에서 세계 각국 직원들을 위한 월드컵을 열었는데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이 아시아 대표로 출전했다. 지난해 9월에는 독일 본사 축구동호회를 초청해 친선 경기를 열기도 했다.

라인케 사장은 어린 시절 수영 선수였다가 축구가 더 좋아 종목을 바꿨다. 19세 때 분데스리가 1부 팀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정도로 뛰어났지만 프로 진출 직전 경기에서 큰 부상을 당했다. 헤딩을 하는 순간 상대 골키퍼가 휘두른 주먹에 관자놀이 급소를 강타당했다.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진 그는 결국 프로 선수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대학에 입학해 경제학과에 다녔다. 축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학업을 계속하면서 아마추어 팀을 거쳐 분데스리가 2부 팀에서 29세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그는 축구화를 벗은 뒤 베링거인겔하임에 입사하면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라인케 사장은 “축구와 학업을 병행했기 때문에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축구로 다진 체력과 정신력으로 남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축구를 통해 인생을 알게 됐다. 승리와 패배를 받아들이는 법과, 부상을 이겨내고 또 다른 인생을 준비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정영재 기자 , 사진=조진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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