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숱한‘9·11’을 잉태한 전쟁의 신전, 펜타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미국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은 워싱턴D.C의 포토맥 강 건너편에 위치한다. 5층 높이의 오각형 건물은 12만 ㎡의 면적을 차지한다. 연 면적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3배다. [중앙포토]

전쟁의 집
제임스 캐럴 지음
전일휘·추미란 옮김
동녁, 864쪽
3만2000원

마치 묵시록적 소설처럼 ‘예정된’ 역사가 있다.

# 1. 2001년 9월11일. 9·11 테러는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를 공격했다. 이와 동시에 자본주의 세계의 ‘영혼’을 조종해 온 건물에 대한 공격은 많이 잊혀졌는데, 바로 미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이다. 아메리칸항공 77편은 미국의 군사적 세계주의의 두뇌인 펜타곤을 들이받았다.

# 2. 1941년 9월11일. 9·11테러 꼭 60년 전의 9월 11일은 펜타곤 건축의 첫 삽을 뜬 날이다.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군부 전용의 청사 건설이 달갑지 않았다.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건물, 대통령의 명령까지도 거부할 듯한 이 고립된 ‘전쟁의 집’은 외교 논리를 압도한 군사 논리로 전후 세계를 지휘했다.

역사 속에 9·11은 무수히 존재한다. 1941년 펜타곤을 탄생시킨 9·11은 60년 뒤 2001년의 9·11과 연결되고, 1973년의 9·11은 칠레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권이 미 CIA와 합작한 피노체트 장군의 군사 쿠데타로 붕괴한 날이다. 이와 함께 1945년의 9·11도 있다. 당시 미 육군장관 헨리 스팀슨은 필사적 군비 경쟁을 피하기 위해 소련과 원자폭탄을 ‘공유’하자는 대담한 제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전후 역사가 목격하듯 그의 제안은 공상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공포에 의한 지배’가 전후 질서였기 때문이다. 미 군부는 소련의 군사력과 호전성을 가능한 한 부풀려 국방 예산을 따냈고 세계는 대결로 치달았다는 게 저자의 관점이다.

864쪽에 달하는 이 방대한 책은 파멸적 체제경쟁으로 치달았던 인류사에 대한 묵시록적 다큐멘터리다. 저자는 가톨릭 사제 출신으로, 전통적인 ‘미국적 양심’을 대변하는 저술가다. 그의 아버지가 공군 장성 출신이라 저자의 개인사와 인류의 냉전사가 밀접하게 접속된다. 저자는 펜타곤으로 상징되는 ‘전쟁의 신전’이 유사 종교와도 같이 미국인의 합리적 이성을 압도했다고 본다.

하지만 지은이는 군사 대결의 냉전사가 개인의 의지를 떠난 것이긴 하지만 역사적 필연도 아니었다는 희망을 본다. 책이 던지는 희망이란 예컨대 이런 것이다. 워싱턴 링컨기념관 옆에 세워진 베트남 참전 기념물. 베트남에서 전사한 미 병사 5만90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어린 딸이 묻는다. “그럼 베트남 군인들의 이름은 어디 있나요?” 이런 소박한 의문이 당연시 될 때 수 백만의 인명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배노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