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증 더하는 '판문점 총격요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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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판문점 총격 요청 사건' 으로 구속된 3인방의 '윗선' 은 있는가. 있다면 누구인가.

안기부 수사 결과 이회창 (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의 동생 회성 (會晟) 씨가 윗선으로 지목되면서 정치권의 치열한 공방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윗선 수사에 초점이 맞춰진 검찰의 수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 안기부와 검찰은 회성씨와 한나라당내 공안통인 J의원 등을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회성씨는 이미 출국금지된 상태다. 검찰이 회성씨를 윗선으로 지목하는 이유는 구속된 한성기씨가 안기부 조사과정에서 "이회성씨로부터 5백만원을 받았다" 고 진술한 점 외에 韓씨와 오정은.장석중씨 등이 대선과정에서 李후보측에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비선 조직원으로 활동한 흔적이 나타났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검찰은 이와 함께 李후보 당선후 대북 물자지원을 약속한 부분을 들어 회성씨 외에 한나라당내 李총재의 측근이 관여했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검찰과 안기부는 이 사건의 윤곽을 구속된 3명은 '행동대원' , 회성씨는 '행동대장', 그리고 李후보측의 실세가 '기획자' 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李총재측은 "안기부가 한성기씨 등에 대한 고문수사를 통해 억지로 윗선을 만들어내려 한다" 며 반발하고 있다.

설사 북풍공작을 했다고 하더라도 당시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측이나 李총재측에서 일개 청와대 행정관과 고위인사 측근행세를 하며 이권에 개입했던 韓씨 등을 활용했겠느냐는 논리다.

李총재측은 韓씨 등이 비선 조직원이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오히려 이들이 접근해와 거리를 두었다며 안기부가 야당 파괴에 특정사건을 악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같이 윗선의 존재 여부와 정체는 검찰의 보강수사를 통해 밝혀질 때까지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이와 더불어 지금까지 드러난 안기부의 수사결과와 사건 관련자들의 당시 행적.진술 등을 놓고 볼 때 옛 안기부의 공작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옛 안기부 개입설은 구속된 대북교역 사업가로 알려진 장석중씨가 중국을 무대로 대북 공작활동을 해온 안기부 비밀 공작원이었다는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

張씨는 '아미산' 이라는 공작명으로 활동하며 지난해 12월 '판문점 총격 공작' 을 시시콜콜 안기부에 보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張씨는 안기부 조사에서도 지난해 '판문점 총격 요청' 때 북한측 인사들과의 접촉이 옥수수박사 김순권 (金順權) 교수의 방북건을 계기로 이뤄졌으며 실제로 金교수의 방북이 성사돼 두차례나 張씨가 함께 북한에 갔었던 사실이 확인됐다.

구속된 韓씨는 강신옥 (姜信玉) 변호사에게 "베이징에서 만난 북측 인사에게 '북풍 한번 안되겠느냐' 고 운을 뗀 뒤 '판문점에서 총격전을 벌여줄 수 있느냐' 고 물었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면 김대중 후보가 당선될지도 모르겠다' 는 말까지 했다" 고 밝혔다.

이는 북측 인사와의 접촉 분위기가 실제로 총격전을 공식 요청하는 수준은 아니었다는 취지여서 북한측 인사의 접촉 목적이 '판문점 총격' 에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았다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이 경우 '북풍 공작' 은 이회성씨와의 연결고리가 아무래도 약해진다는 것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韓씨 등을 대선 기간에 적당한 명분을 달아 특정 후보측에 접근한 뒤 잘되면 논공행상 (論功行賞) 을 받으려는 정치판 철새들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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