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작가 한창훈·공선옥씨 현장에 뿌리내린 신작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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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요즘 젊은 작가들의 소설은 너무 개인적이다. 은밀하다.

자신의 마음 속에 들끓는 욕망, 남에게 절대 들켜서는 안될 부분까지 용감히 털어놓는다.

욕망의 잔치인 이런 젊은 소설들에는 더불어 사는 삶이 끼어들 틈이 없다.

무엇이 진정한 삶인가하는 삶의 가치도 돌볼 겨를이 없다.

세기말적인 이런 젊은 소설계에 삶의 진정한 모습을 뒤돌아 볼 수 있게 하는 소설이 잇달아 나왔다.

공선옥씨는 소설집 '내 생의 알리바이' (창작과비평사刊) , 한창훈씨는 장편 '홍합' (한계레신문사) 을 최근 각각 펴냈다.

91년 '창작과비평' 을 통해 문단에 나온 공씨는 '오지리에 두고온 서른살' '피어라 수선화' 등을 펴내며 여성의 모성성과 끊질진 생명력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92년부터 본격적으로 소설활동을 시작한 한씨는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가던 새 본다' 등을 펴내며 서민들의 삶을 걸쭉하게 그려오고 있다.

"그네들에게 세월이란, 수줍음이 무늬가 되던 몸에서 독기가 새록새록 피어나오다가 끝내 몰염치의 아성으로 굳어지는, 그 독한 시간대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의 몸에는 부드러운 맨살도 있고 일에 혹독하게 달궈진 끝에 반들반들 닳은 굳은살이 있듯이 사람들 중에도 교양으로 제정신의 꽃을 피우는 부류와 이렇게 딱딱한 살로 차가운 바닥을 버텨내주는 부류가 있다.

" 작중 화자가 말하듯 '홍합' 은 굳은 살로 딱딱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여인네들에 대한 이야기다.

무대는 여수의 한 홍합공장. 바다에서 따온 홍합을 까고 찌고 포장하는 아줌마 근로자들의 삶이 걸판지게 펼쳐진다.

그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펼치는 사람은 서울 삶을 거덜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홍합공장에 취직한 노총각 화물트럭 기사. 그의 눈을 통해 최하층 여성들의 삶과 사연이 있는 그대로 그려진다.

힘도 세고 눈썰미 있게 일도 잘해 작업 반장인 강미네. 사내들의 싸움도 거침없이 말리고 입도 거센 여인이지만 가계에 조금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남편에게는 맞고 사는 여자.

음담패설은 도맡아 하면서도 작업조원들에게 보살로 통할 정도로 온갖 투정 다 받아주는 쌍봉댁. 왁자지껄한 작업장에서도 있는듯 없는듯 다소곳한 젊은 과부 승희네. 이런 저런 사연을 갖고 홍합공장에서 일해 가계를 책임지는 중년 여성들의 삶을 '홍합' 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교양이라는 치장된 문화 혹은 가식이 끼어들 틈은 없다.

단지 살아내야만 하는 삶의 현장이 있을 뿐이다.

한씨는 특유의 게걸스런 입담으로 최하층 여인네의 곤궁한 삶이지만 온몸으로 살아내는 삶에 재미와 아름다움을 돌려주고 있다.

"애기엄마는 절대로 술 먹고 담배 피우지 않는다 라고 생각하는 남자에게 시집 가서 절대로 술 안 먹고 담배 안 피우고 건강한 새끼들 많이 낳고 평화롭게 살아봤으면. 그렇지만 나는 '우리 새끼' 들의 엄마다.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다. "

열한편의 단편을 싣고 있는 '내 생의 알리바이' 에서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 한 부분이다.

고향의 아동일시보호소에 아이를 맡기고 서울서 돈벌이하는 여자가 그 아이를 찾으려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는 야간 열차. 회상을 통해 그 여자의 곤궁했던 과거가 펼쳐지면서 열차안에서 같이 살자는 한 남자의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그 여자의 뜨내기 삶은 '우리 새끼' 를 향한 모성애로 튼튼하게 밑받침 돼 있다.

30대의 90년대 작가이면서도 공씨와 한씨의 소설들에는 이같이 삶의 모습, 인생이 생째로 들어있다.

7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민중문학은 이념과 함께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이 아니다.

현장에 뿌리내린 이런 작가들에 의해 민중의 삶에 건강한 의미를 주며 민족문학으로서 튼튼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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