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노정객의 신선한 발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 시대에 영웅 (英雄) 은 모두 어디로 갔나. 우리의 아이들이 정직한 삶을 사는 데 모범이 될만한 지도자들은 과연 어디에 있나. " 상원의원 40년, 하원까지 합하면 거의 반세기를 미 의회에서 보낸 미국의 노정객 로버트 버드 의원은 본회의장 연설에서 이같이 개탄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스캔들을 둘러싸고 입가진 이들이 모두 나서 한마디씩 거드는 마당에 모처럼 신선했던 발언이다.

며칠 뒤 CBS - TV의 '60분' 이란 시사프로의 진행자 앤디 루니가 방송도중 스캔들의 주역과 법석 떠는 언론 및 논객들을 싸잡아 '모두가 개××들' 이라 몰아붙여 물의를 빚었다.

그는 같은 프로만 20년 사회를 맡아 온 방송계의 원로. 버드 의원의 연설이 듣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면 루니의 튀는 발언은 시청자들의 답답한 가슴을 대변했다.

정치는 감동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언론은 명쾌하면서 참신해야 한다.

정치나 언론이나 때로는 울적한 백성들에게 충격과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정치행위가 국민에게 주는 감동은 대중들에게 지도자의 필요성을 일깨워 준다.

국민의 가슴에 진한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자학에 빠져드는 정치는 이미 죽은 정치다.

마찬가지로 약자에겐 군림하고 강자 앞에선 꼬리를 빼는 언론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사회가 혼돈스러울 때 신뢰가는 지도자의 참신한 말 한마디는 나라의 가는 길에 국민의 믿음을 이끌어 낸다.

그리고 한계가 모호한 심판에 끌려가 몰매 맞는 이들의 억울함 (?) 을 언론이 대변할 수 있을 때 국민은 기댈 곳을 찾아 안도한다. 웃음 잃은 우리 국민에겐 근거없는 위로보다 차라리 노정객의 자기성찰과 꾸짖음이 더욱 그립다.

대통령의 스캔들을 둘러싼 미 정치판과 언론의 푸닥거리가 그래도 참고 봐줄 만한 이유는 가끔이나마 감동을 주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길정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