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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정권교체 의미와 전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독일은 변화를 선택했다. " 27일 오후 6시. 국영 ARD - TV가 총선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순간 본 시내의 사민당사는 환호와 박수 속에 파묻혔다.

당 간부들에게 둘러싸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사민당 총리후보는 두 손을 번쩍 치켜든 채 "세대교체의 승리" 를 되풀이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슈뢰더 시대의 개막. 헬무트 콜의 16년 장기집권을 마감시킨 이번 총선은 슈뢰더의 말대로 독일 정치의 세대교체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

아울러 독일에 좌파정권이 등장함으로써 유럽의 큰 흐름이 좌파정권으로 재편성되고 있다는 점도 관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나치즘을 경험한 전전 (戰前) 세대가 물러나고 슈뢰더와 외무장관으로 거론되는 요스카 피셔 녹색당 원내총무, 기민당 당수로 유력시되는 볼프강 쇼이블레 원내총무 등 전후세대가 전면에 등장, 독일은 2차대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보수성이 강한 독일에서 대중정치 시대가 개막됐다는 점도 눈에 띄는 변화다.

전후 독일 정치는 권위적 장로정치였다.

그러나 슈뢰더의 등장은 대중정치로의 변화를 의미하고 있다.

모호한 정책공약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언변과 미디어 시대에 어울리는 용모가 슈뢰더 승인 (勝因) 의 하나였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27일 본의 한 거리에서 만난 대학생은 "독일 정치는 이제 이성적이라기보다 감성적이 될 것이다.

독일에는 에너지가 주입됐다" 며 다소 흥분된 표정이었다.

이처럼 독일 거리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새 총리와 변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술렁이는 분위기다.

변화의 동인 (動因) 은 콜 기민당 정권의 장기집권에 따른 식상감과 높은 실업률이라는 분석이다.

영국과 프랑스 등 주변국에서 분 변화의 바람과 전후 (戰後) 최고의 실업도 콜 정권의 퇴진을 촉진한 요인중 하나다.

전후 50년 역사의 본 시대를 마감하고 베를린 시대가 열리는 시점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져 '새로운 시대를 연다' 는 상징적 의미도 부여받고 있다.

슈뢰더는 '신 중도주의' 를 내세우며 영국의 토니 블레어와 함게 이른바 '제3의 길' 을 표방, 기존의 사민주의에서 크게 우경화한 게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분배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실질적으로 나타날 그의 정책노선이 관심을 끌고 있다.

슈뢰더의 가장 큰 과제는 약점인 당내 기반의 확보다.

당원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오스카 라퐁텐 당수의 전통적 좌파주의와 그가 밝힌 개혁.현대화 의지가 어떻게 조화될 것인지가 관심거리다.

거론되고 있는 녹색당과의 연정이 현실화되기까지 두 당의 정책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도 관건이다.

유럽 단일통화인 유로 도입이 코 앞에 다가온 시점에서 유럽합중국의 완성을 꿈꿔온 콜이 퇴진, 유럽통합 추진력이 상실될 것이라는 걱정도 있다.

다만 대내외 정책의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한편 구동독 공산당 후신인 민사당이 구동독 지역을 무대로 모두 35석을 확보, 건재를 확인한 것도 특기할 만하다.

높은 실업률과 소외감 등 통일후 상황에 대한 동독지역 주민의 불만이 표로 나타난 것이다.

본 =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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