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은행파업은 위기 부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국제결제은행 (BIS) 이 정한 자기자본비율 기준에 합격하지 못하는데도 퇴출을 보류하고 있는 이른바 조건부 승인 7개 은행과, 정부가 이미 대규모 자본을 출자한 제일.서울 2개 은행 등 9개 시중은행에 대한 고용조정 문제를 놓고 28일부터는 철야농성에, 그리고 29일부터는 총파업에 들어간다는 금융노련의 내부지침이 27일자로 전조합원에게 시달돼 있는 중이다.

금융위기 속의 은행들은 퇴출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지만, 살아남는 은행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규모 고용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대체로 움직일 수 없는 객관적 사실로 보인다.

관련은행의 은행장들은 금융감독위원회에 40%의 감원을 약조했다.

물론 이 비율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그 구제되는 당사자들과 노조로서는 큰 보람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해당은행의 개별노조와 금융노련이 고용조정 비율을 줄이거나 조정대상자에 대한 퇴직수당을 조금이라도 늘려 주려고 노력하는 것은 매우 눈물겹고도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교섭에서 이기기 위해 철야농성, 하물며 총파업을 감행하겠다는 극단적 지침을 시달했다는 것은 이 시기에 너무도 부적절한 처사라고 본다.

그 이유는 큰 줄거리로 쳐 두 개다.

이 9개 은행은 '조건부 승인' 이라는 말이 드러내듯이 실은 승인이 취소돼야 하는 은행들이다.

만일 이 은행들의 부실자산 내역과 불안한 자본비율이 투명하게 드러난 상태에서 지금이라도 정부의 예금자 보호약속만 없어지면 예금인출 소동이 일어날 것은 거의 명백하다.

자연스럽게 이들 은행은 퇴출되고 말 것이다.

은행경영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이른바 '관치금융' 의 죄라는 것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더러 그 책임을 지라고 한다면 지금 같은 금융위기 속에서는 그 돈은 납세자가 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러므로 금융노련의 파업방침은 그 상대자가 여느 때처럼 은행경영자나 정부가 아니라 직접 예금자와 납세 국민이 된다.

이것이 그 첫째 이유다.

지금 우리나라 산업은 안 그래도 생산기반 와해과정에서 전반적으로 신음하고 있다.

만일 은행파업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산업의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지급능력 네트워크가 순식간에 전체적으로 마비돼 파국적 상황이 올 우려마저 크다.

게다가 지금은 추석명절을 앞두고 있다.

자칫 한국경제 전체에 타이타닉호의 침몰을 일으킨 태산 같은 유빙 (流氷) 의 역할을 은행파업이 몰고 올 수 있다.

이것이 그 둘째 이유다.

이 시기에 은행파업만은 안된다.

금융노련은 투쟁방법을 완화하기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