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자격 있으세요]1.자식도 인격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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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근 보험금을 타기위해 아들의 손가락을 절단한 아버지 사건부터 각종 공중질서의 해이, 고액과외나 촌지 등 교육계 병폐에 이르기까지 각종 사회문제에 있어 부모의 자질에 1차적인 책임을 묻는 이들이 많다.

복지나 교육제도의 개선과 더불어 부모로서의 자질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어린 것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 일주일이 멀다하고 들리는 '동반자살' 사건들. 그중 가장 많은 것이 '부모.자녀' 관계다.

지난 78년~95년의 동반자살 2백64건을 연구했던 한양대 신경정신과 안동현 교수는 " '부모.자녀' 간 동반자살이 가장 큰 비율 (62%) 을 차지했다" 며 "이 경우 거의 1백% 자녀의 의사와는 무관한 '살인' 이었다" 고 전한다.

미비한 사회보장제도 등 '차마 자식이 혼자 고생하게 남겨둘 수 없었던' 사정이나, 자녀가 아직 의사를 표현하기 힘들만큼 어린 나이였다는 것 등을 헤아린다 해도 생사결정권을 맘대로 빼앗은 것은 부모의 '권리남용' 이라는 것.

부모들은 흔히 '낳았으니 모두 내 책임' 이라는 무한대의 책임주의에 짓눌리기 쉽다.

그러나 이는 '낳았으니 내 맘대로' 와 다를바 없는 생각. 성신여대 심리건강연구소 채규만 교수는 "독립된 개체로서의 자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한책임' 과 '맘대로' 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고 지적한다.

또 "자녀에 대해 '소유' 의 개념을 갖고 '나의 연장' '나의 분신' 으로 여기다보면 자녀를 의존적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 심한 경우 정신분열증까지 초래할 수 있다" 고 경고한다.

하지만 부모들로선 "다 자기들을 위한 것" "아직 어린 아이로만 보여 불안하다" 며 자녀의 독립성을 인정하기 힘든 법. "우리 엄만 매일 저녁 다음날 내가 입을 속옷부터 양말까지 다 골라놓으세요. 자기 맘대로 옷을 사입는 친구들도 있는데…. " (초등학교 6년생 박모양)

"의상디자인이 하고 싶었는데 '사내자식이 무슨 의상이냐' 는 아버지 때문에 결국 공대를 들어왔죠. 몇년째 학점이 바닥인데 군대나 갈까봐요. " (대학교 3년생 신모군)

이에 대해 청소년대화의광장 부모교육팀 이영선 상담원은 "2살 이후부터는 아이들이 스스로 뭔가를 하려고 고집을 피우기 시작한다" 며 "완전히 어머니와 분리시켜주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있다' 는 자신감부터 심어줘라" 고 조언한다.

채교수도 5~6세까지는 부모가 다소 '독재적' 일 필요가 있으나 ▶7~8세부터는 행동방향을 제시하는 '지시자' ▶사춘기에는 같이 하며 조언하는 '코치' ▶성인이 되면 단순한 '조언자' 로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주부 정혜영 (35.서울성동구옥수동) 씨는 초등학교 3학년.유치원생인 아이들의 학원문제도 본인과 꼭 상의해 결정하는 경우. 큰 아들이 얼마전 검도를 시작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먼저 그 이유를 묻고 한달 가까이 아이의 의사가 변함없자 "최소한 검은 띠 딸 때까지는 꾸준히 다니겠다" 고 다짐받은 뒤 보내기 시작했다.

아이는 요즘 아침 6시반이면 스스로 일어나 체육관에서 1시간씩 검도를 배우고 학교에 간다고. 외국의 경우 요즘엔 부모의 보다 세심한 관심을 강조하는 추세이지만 아이들의 자율적 의지를 존중하는 것은 기본이다.

주부 심미숙 (49.서울서초동) 씨는 몇년 전 프랑스에 사는 언니가족이 방문, 여섯살 난 조카의 짐 속에서 외출복을 골라준 적이 있었다.

예쁜 옷을 마다하고 굳이 '후즐근해 보이는' 원피스를 고집하는 조카와 실강이를 벌이는 심씨를 보고 언니는 "그애 나름대로 이유가 있으니 그냥 두라" 며 그 원피스를 입혀 나가더라고. 심씨는 "아이들을 마치 자신의 장난감 인형처럼 꾸미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엄마들과 비교가 됐다" 고 말한다.

한마디로 '자식키우는 일은 연날리기와 같다' 는 옛말처럼 적당한 때에는 끈을 놔줄 줄 아는 것이 훨훨 잘 날 수 있도록 돕는 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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