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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총선 현장]與거물 유세장 인신공격·야유 없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동쪽으로 30㎞쯤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 노이엔하겐. 8년전만 해도 옛 동독땅이었던 곳이다.

내년부터 시작되는 연방정부 이전을 앞두고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사판으로 변해 있는 베를린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21세기 독일의 운명을 좌우할 9.27총선이 엿새 앞으로 다가온 지난 21일. 5연속 집권을 노리는 기민당 (CDU) 의 선거유세가 인구 8천명의 조용한 이 마을에서 열렸다.

3백평 남짓한 마을공화당 유세장은 차분했다.

단상에 '새로운 출발' 이라고 쓰인 포스터가 걸려 있고 의자마다 공약이 담긴 선거용 유인물과 후보의 화보 정도가 선거의 분위기를 살리고 있었다.

요란한 피켓이나 후보이름 연호도 없었다.

다만 CDU 마크가 찍힌 볼펜 한자루씩이 참가자들에게 나눠졌다.

물론 이를 타려고 벌어지는 소동은 없었다.

동네 유권자들이 들어차자 휠체어를 탄 볼프강 쇼이블레 (55)가 기립박수 속에 단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대부분 쇼이블레를 처음 보는 듯 고개를 빼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였다.

쇼이블레는 독일에서 가장 신망 높은 정치인. 차기총리 자리를 놓고 박빙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헬무트 콜 (기민당) 이나 게르하르트 슈뢰더 (사민당.SPD) 보다 여론조사에서 더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그는 "콜이 너무 오래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슈뢰더의 16주 (週) 는 콜의 16년보다 더 길게 느껴질 것" 이라며 포문을 열었다.

그는 세제와 사회복지제도 개혁에서 유럽단일통화와 외국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거이슈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지역이 지역인 만큼 옛 동독지역에 대한 기민당의 정책설명에 무게가 실렸다.

동독지역의 평균실업률은 18%로 서독지역의 배에 달한다.

2류시민이라는 열등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옛 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 (PDS) 이나 극우파가 지역적으로 힘을 얻는 이유다.

경쟁당의 총재인 슈뢰더가 구린 정치자금을 쓴다느니 집권 음모를 갖고 있느니 하는 저질 발언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았다.

장밋빛 환상도 제시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동독문제는 시장경제로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 이라며 "동.서독 경제적 차이는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고 솔직히 말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겠다" 고 강조한 그가 공약한 것은 연방정부 예산중 대 (對) 동독 예산비율을 종전수준으로 유지한다는 게 전부였다.

'공약 (空約)' 과 인신공격을 찾아볼 수 없는 쇼이블레의 노이엔하겐 유세는 상대 헐뜯기와 엉터리 공약, 야유와 싸움질이 난무하는 한국의 유세에 익숙한 기자에게는 차라리 정책토론회로 여겨질 정도였다.

베를린=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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