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행 옴부즈맨칼럼]포르노같은 스타보고서 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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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성 (性)' 이라고 하면 으레 섹스를 생각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본래 '성' 이란 한자는 마음을 뜻하는 심 (心 = ) 자와 태어난다는 뜻의 생 (生) 자를 합쳐 만든 것이다.

곧 사람이 날 (生) 때부터 타고난 마음 () 이란 뜻의 글자가 바로 '성' 인 셈이다.

철학적 측면에서 '성' 이란 성품 (性品) 이상의 뜻을 지니는 것으로 풀이되기도 하며, 종교적으론 마음의 본바탕을 일컫는 것이 곧 '성' 이다.

이에 반해 색 (色) 이란 색깔 또는 낯빛을 나타내는 글자인 동시에 예쁜 계집을 뜻하는 것이다.

색탐 (色貪) 이란 곧 여자를 탐한다는 뜻이고, 이와 관련된 낱말로는 색광 (色狂).색골 (色骨).색마 (色魔) 등 무수히 많다.

이른바 '색' 과 관련된 말 가운데 클린턴에게 해당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어떤 도덕적 기준에 비춰 보더라도 지도자의 자격요건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 클린턴의 행태가 아니겠는가.

지도자가 도덕성을 잃었을 때는 마땅히 물러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미국의 비극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재앙으로까지 번질 염려가 큰 법이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우리의 매스컴도 당연히 클린턴의 사임을 주장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나라 매스컴은 그런 주장보다는 스타 특별검사의 보고서 내용과 주변상황을 보도하는 데만 급급했을 따름이었다.

물론 상황의 중요성이나 사안의 객관적 보도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그런 보도는 어떤 주장보다도 선행 (先行)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스타 검사의 보고서를 다룬 우리나라 주요 신문들의 보도태도가 설령 객관적이었다손 치더라도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객관적이라는 미명 (美名) 아래 포르노나 진배없는 짙은 표현들을 그대로 신문에 썼다는 것은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줄 안다.

따지고 보면 이번 스타 검사의 보고서는 어떤 내용을 어떻게 간추렸느냐에서 사실상 객관성보다는 주관성이 크게 작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주관성은 곧 편집자의 가치판단과 직결되는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것이 만약 가치판단의 '문제' 를 그대로 드러냈다고 본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번 스타 검사 보고서는 어떤 의미에서든 신문이 직면한 위기적 상황이 얼마나 심대한 것인가를 시사해 주고도 남는다.

그것은 비단 도덕성의 문제나 주체적 (主體的) 가치판단의 문제를 뛰어넘은 객관적 사실로서의 인터넷 뉴스서비스와의 관계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진 누가 뭐라든간에 방대한 분량의 정보를 다룰 수 있는 매체는 오직 신문뿐이라고 여겨져 왔었다.

TV나 라디오뉴스로는 신문에 담긴 뉴스의 분량을 도저히 커버할 수 없다는 것이 하나의 정평 (定評) 이었다.

그러나 바야흐로 인터넷을 통해 뉴스가 세계적으로 동시에 무한정 쏟아지는 상황에선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것은 신문이 지닌 강점을 소멸시킬 뿐만 아니라 신문 자체의 존재양식까지 위협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런 상황이 신문 본연의 책임을 가볍게 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지적했지만 '인터넷 같은 극도로 신속한 매체를 사용하면 할수록' 언론은 '그만큼 많은 책임' 을 져야 한다고 아니할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신문의 강점은 대량의 정보를 가득 담는 데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 (理性的) 이고 분석적 (分析的) 인 편집에서 찾아진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여론을 주도하는 신문의 본령은 속보성 (速報性) 이나 기사의 양 (量) 보다 높은 도덕성을 바탕에 깐 역사적이고도 분석적인 데 있음을 강조해 두고 싶다.

이규행(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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