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정국 어디로 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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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법정 정기국회 개회일 (9월 10일) 이 10여일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국회는 표류하고 있다.

사정정국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국회 정상화 전망 역시 불분명하다.

겉으론 "25일께 국회 강행 (여당)" "표적사정 중단없는 한 장외투쟁 계속 (한나라당)" 등 거친 숨결만이 들릴 뿐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지난 주말 있었던 김대중 대통령의 춘천 발언이 정상화의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金대통령은 "필요없이 사정을 길게 하거나 범위를 넓히지 않겠다" 면서, 특히 지난해 11월 14일 이전의 정치인 비리 수사는 신중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한나라당은 지난주 내내 계속된 사정 강공 (强攻) 이 국민불안을 가중시키는 등 여론 역풍 (逆風) 이 일었기 때문에 청와대가 변화를 추구하게 됐다고 파악한다.

나아가 이런 상황이 다음달까지 지속될 경우 민족 대이동의 추석연휴때 불황.실업대란의 불만과 겹친 정부 비판의 목소리가 커질 것을 염려했다는 지적도 한다.

이밖에 대통령의 방일 (訪日) 전 국내정치를 잠잠하게 할 전략적 필요성도 염두에 두지 않았겠느냐는 설명이다.

박희태 (朴熺太) 한나라당 원내총무는 "비정상적 사정이 통상적 사정으로 돌아간 듯하다" 면서도 "정국정상화 협상이 무르익다가 '이기택 전격소환' 이라는 기습을 당한 적이 있어 좀 더 두고 봐야겠다" 고 신중한 반응을 보인다.

朴총무는 "협상의 결실을 맺겠다는 (청와대와 여권의) 확고한 의사는 물론 그걸 지속시킬 상황적 담보가 있어야 한다" 고 했다.

경성.청구사건 등에 대한 조속한 매듭과 소환 정치인의 불구속 수사방침 등이 나와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렇듯 잔뜩 경계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대화는 대화대로 모색하는 중이다.

여권을 자극하는 것도, 파행을 지속하는 것도 모두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윤여준 (尹汝雋) 총재특보가 청와대측과 막후 협상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여야간 대화에 관한한 여당측도 다를 바 없다. '상시 (常時) 사정' 원칙 등을 강조하면서도 조건이 갖춰지면 협상테이블에 앉겠다는 뜻은 분명하다.

조세형 (趙世衡) 총재권한대행.한화갑 (韓和甲) 원내총무 등 국민회의 지도부는 야당의 무조건 국회등원, 소환대상 의원의 검찰출두 등을 대화의 선결조건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자민련의 목소리는 다르다. 김종필 (金鍾泌) 총리를 비롯한 자민련 수뇌부는 사정정국에 적잖은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회의 일각에선 자민련도 사정의 타깃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사정중단' 을 말한다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인데, 자민련 김용환 (金龍煥) 수석부총재는 "검찰에 소환되는 현역의원들의 모습이 자주 TV에 비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는 말로 사정드라이브를 '비판' 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표적사정 안한다' 는 보장을 받아야 정상화에 협조하겠다는 것. 영수회담 수락도 함께 요구하고 있다.

여야는 이같은 전제조건 수용을 서로 요구하면서 이번주 중반까지는 제 갈길로 갈 작정이다.

한나라당은 '야당파괴 저지 서울대집회 (24일)' 를 강행하고 국민회의는 '세금도둑 한나라당 진상보고대회 (21.22일, 서울.인천.경기)' 를 갖는다.

특히 23일은 金총리가 주재하고 김중권 (金重權) 청와대 비서실장 및 2여 (與) 지도부가 참석하는 국정협의회가 예정돼 있어 정국 정상화 여부가 판가름날 듯하다.

현 정국상황에 떨떠름해 하는 자민련이 국민회의측에 어떤 주장을 펼지도 정국 정상화의 주요 변수다.

청와대 고위소식통은 "이회창 총재가 국세청 사건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면 문제가 풀릴 수 있다" 고 언급했다.

이기택 전 총재권한대행의 단식은 정상화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전영기.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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