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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행 티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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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최근에는 가게 하나가 문을 닫아 황 노인의 수입은 최저생계비 수준인 월 120만원이 되었다. 이는 스스로 선택한 길이나 그는 주변에 내색하지 못했다. 이웃 가게들에서 탈이 생길까 염려한 탓이다. 황 노인의 침묵은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자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겠으나, 어쩌면 그는 자기보다 더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염려했을 것이다. 한 사람은 30년 동안 그의 가게에서 장사를 했고 다른 한 사람은 24년 전에 세를 들었다. 한 세대 동안 그의 가게에서 장사를 한 사람들은 세입자에서 친구로 바뀌었다.

그는 세든 가게들의 경영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동네 고객들을 유치하는 데 힘을 썼다. 그는 한 동네에서 수십 년을 살았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근의 교우들과 신용협동조합 사람들에게도 아래층 가게들을 이용해 달라고 홍보하였다. 정년퇴직을 했다고는 하지만, 남의 살림살이와 가게 경영을 너무 걱정하다 보니, 살림을 사는 안주인의 어려움이 늘었고 주위의 핀잔도 더러 들었으나, 주인과 세입자들은 황혼의 나이에 이르도록 이웃사촌의 정을 나눈다.

주역은 ‘곤(坤)’의 괘에서 “너무 돈을 아끼면 허물이 없으나 명예도 없다”며 인류에 봉사하는 상생의 도를 밝힌다. 경전에서는 “부자의 천국행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가르치지만, 빌 게이츠의 자선사업에서 알 수 있듯이, 부자들이 자선에 냉담한 것은 아니다. 영국에서는 100년 전 제정된 국민신탁법에 따라 처칠 가문과 존 레넌과 같은 명사들이 미래 세대의 환경과 문화를 보전하는 공유화 운동에 앞장섰다.

격변의 근대화를 거치며 자선 풍토가 많이 사라졌지만, 전 재산을 출연하여 장학재단을 설립한 대통령의 결단은 척박한 기부문화를 선도할 것이다. 대법관을 역임한 원로 법조인은 얼마 전에 부인과 공동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하였다. 어느 국회의원은 퇴직금을 받아 노후용으로 사두었던 제주도의 땅을 미래 세대 앞으로 기부하였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고 우면산 보전운동에 앞장섰던 여류 언론인은 선산을 기증하였다. 『꼬방동네 사람들』의 주인공 목사님은 무주의 숲을 생태 교육과 귀농운동에 내놓았다. 관동별곡·사미인곡을 지은 송강의 16대손 며느리는 교직에서 모은 재산을 국민의 재산으로 헌정하였다.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라는 소박한 의문은 종교개혁의 길목에 섰던 근대인들의 화두였다. 종교사상가 칼뱅은 직업을 통한 부의 축적을 긍정하면서 근면성실 속에서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설파해 근대 자본주의의 정신적 토대를 닦았다. 제사장도 외면한 행인을 도와준 ‘착한 사마리아인’은 바늘구멍을 걱정하지 않았다. 마음이 착한 분들의 숨은 자선이나 명사들의 기부는 인류와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것으로 믿는다.

전재경 자연환경국민신탁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