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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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 의사가 내게 "이러다가는 국민이 집단 히스테리에 걸리겠다" 는 말을 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경제.정치.사회 모든 분야에서 나쁜 소식들만 밤낮으로 듣고 살게 되니 이렇게 계속되다가는 집단 히스테리에 걸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쥐를 대상으로 했던 한 실험의 보고서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각각 10마리인 A팀 B팀의 쥐들을 한 상자에 넣었다.

상자의 한 면을 열고는 망으로 막았다.

상자 안에 있는 20마리의 쥐들이 밖을 훤히 내다볼 수는 있지만 망이 쳐져 있기에 안에서도 밖에서도 드나들 수는 없는 조건이다.

그리고는 고양이 한 마리가 상자 앞을 왔다갔다 하게 했다.

고양이는 가끔 상자 속을 들여다 보며 '야웅 야웅'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기를 얼마간 계속하니 쥐들은 스트레스가 쌓여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키게 됐다.

처음에는 다른 팀의 쥐들을 서로 물어뜯더니 후에는 다른 팀, 자기 팀 관계없이 무차별로 상대를 물어뜯고 싸우게 됐다.

후에 그 쥐들을 해부해보니 장과 위에 출혈이 심했고 간과 쓸개도 상해 있었다.

비록 쥐들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쌓이는 스트레스가 개인과 공동체의 건강.정서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주는 한 예라 하겠다.

일찍이 다산 (茶山) 정약용 (丁若鏞) 선생께서 이르기를 "정치의 요체는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 이라고 했다.

다산선생의 기준에 따르자면 지금 이 나라의 정치는 백성들을 괴롭히려고 작정한 사람들이 꾸려나가고 있는 정치다.

부패.사정.탈당.입당.소환.투쟁, 이런 말들만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는 정치다.

거기에다 부도.해고.퇴출.붕괴, 이런 경제의 소식들을 날이면 날마다 들어야 한다.

이런 날들이 계속된다면 어찌 국민에게서 집단 히스테리가 일어나지 않겠는가.

이제는 그 사정 (司正) 이란 말은 그만 듣게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리고 이런 말 한번 들어봤으면 좋겠다.

"국민 여러분, 우리들 정치가들이 국민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가들을 염려하게 하는 정치를 해서 죄송합니다. 우리들 정치인이 여와 야를 불문하고 모두가 사정의 대상이 되고 말았으니 이제는 도리없습니다.

모든 것을 털어 없던 것으로 하고 새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국민 여러분이 우리 정치가들의 이 점을 이해해 주시길 사정합니다" .

YS가 사정의 칼을 휘두르고 있었을 때 어느 분이 내게 물었다.

"목사님, 지금 이 나라에서 사정을 가장 길게 하는 남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 내가 "글쎄요. 그 남자가 누굴까요. 저는 아닌 것 같은데요" 라고 대답했더니 그가 말했다.

"YS지요. 사정을 5년간이나 계속하겠다니까 바로 그 남자지요. 그런데요, 제 생각으로는 사정을 그렇게 길게해도 애기도 하나 못낳을 겁니다. "

당시에 계속되는 사정 사정이란 말에 얼마나 식상했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그런데 그 사정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으니 이제는 지겹다 못해 역겨움을 느끼게 된다.

나라일에 통.반장도 한번 못 해본 우리들 서민들이 바라는 정치는 이런 정치가 아니다.

일자리 만들어내주는 정치요, 겨레의 장래에 희망을 보여주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정치다.

그런 희망과 편안함이 있어야 오늘의 어려움을 견뎌 나갈 힘과 여유가 있어지지 않겠는가.

그리고 우리들이 바라는 정치는 최소한의 의리와 품위나마 보여주는 정치다.

국회의원들이 소속 당 바꾸기를 마치 기생 서방 바꾸듯이 해대니 이게 무슨 정치라 하겠는가.

실로 자식들 보기에 민망할 노릇이다.

그렇게 옮겨다니는 사람들은 자식도 없을까. 나는 정치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한국 정치판에서 꼭 이뤄줬으면 하는 것 세가지가 있다.

누군가 힘 있는 사람이 좀 귀담아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첫째는 국회의원이고, 도지사고 출마할 때 당 총재가 공천하지 말고 당원들이 공천하는 제도다.

그래야 바닥사람들이 힘 쓰는 세월이 오지 않겠는가.

둘째는 이 당에서 국회의원 하다가 저 당으로 옮길 때는 의원직이 자동으로 떨어지게 하는 일이다.

그래야 정치판에 의리 비슷한 것이 남아나지 않겠는가.

셋째는 국회의원들 세비를 올려주고 관혼상제에 부조금 내는 것을 법으로 막아주어 의원들의 돈 걱정을 덜어주는 일이다.

그래야 징역가는 의원들이 없어지지 않겠는가.

김진홍(목사.두레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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