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진의 서핑 차이나] 중국이 보는 미국의 ‘차이메리카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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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 브레이크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다. 미국 부통령 동생을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형을 탈옥시키는 똑똑한 건축가 주인공의 활약을 그린 드라마다. 2005년 첫 방영돼 지난 5월15일 시즌4를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종영됐다. 그 가운데 5월8일 방영된 시즌4 에피소드 20회 ‘카우보이와 인디안’에서 컴퍼니라고 불리는 미국 비밀조직 출신의 주인공 모친이 킬러를 고용해 인도 수상의 아들을 암살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암살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정보를 흘린다. 분노한 인도 수상은 중국과 전쟁을 벌이기 위해 그녀에게 특수 무기를 거금을 주고 구입한다. 컴퍼니의 수장은 1962년 중-인 국경분쟁을 그녀가 유도했으며 전쟁이 발발하면 그녀가 군수물자 수송을 장악해 막대한 수익을 올릴 것이라고 말한다.
단지 TV드라마에 불구하지만 왠지 범상치 않은 시나리오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수많은 ‘카드’를 갖고 있음을 암암리에 보여주려 한듯이 보인다.

한국 언론에선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가 고조된 지난해 11월부터 ‘차이메리카(Chimerica, 中美國)’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차이메리카’는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사학을 전공하는 닐 퍼거슨 교수가 2007년에 첫 선을 보인 말이다. 한국 언론들은 중국이 이미 미국과 대등할 정도로 부상했다는 증거로 이 용어를 소개했다. ‘팍스 시니카’, ‘미·중 양국의 G2 패권시대’, ‘西美東中의 세계’ 등등의 해석을 붙여 ‘차이메리카’의 등장을 알렸다. 한국 언론들은 미국발 중국 띠우기 논리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기에 급급했다. 중국의 시각은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중국도 ‘차이메리카론’에 한껏 고무된 듯이 보도했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이 내민 사탕을 낼름 받아먹지 않을 모양새다. 최근 중국 매체에 ‘차이메리카론’의 본질을 꿰뚫어봐야 한다며 경각심을 높이는 기사가 자주 실린다. ‘차이메리카론’은 ‘중국위협론’의 최신 버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뒤, 중국을 소련 붕괴 후 옐친의 러시아와 같이 만들려는 속셈이라고 직격탄을 날린다. 중국은 미국에 예속된 부용국(附庸國)이 결코 되지 않으리라는 결연한 의지도 내비친다.
“우리는 낡은 틀을 고수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나치게 잘난체해서도 안된다. 착실하고 견실하게 나아가야 한다. 국내건설과 국제합작의 신국면을 열어나가는데 노력하자. 시대변천의 신시기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하고 싶은 바는 하는 유소작위(有所作爲)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중국인들의 속내를 보여주는 말이다. 미래를 위해 칼날을 갈며 준비한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시기는 이미 지났음을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중국은 ‘차이메리카론’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차이메리카 논자들은 미국과 중국을 결혼한 가정에 비유한다. 남자는 돈을 벌고 여자는 돈을 쓴다. 남자는 중국이고 여자는 미국이다. 그러나 걱정할 것이 없다. 차이메리카는 두 개의 국가가 아니다. 하나의 국가다. 즉, 동방의 중미국인이 저축하고, 서방의 중미국인이 소비한다. 동방의 중미국인이 가공 생산하고, 서방의 중미국인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동방의 중미국인이 상품을 수출하고 서방의 중미국인이 상품을 수입한다. 이는 서로 부족한 것을 메꿔주는 최고의 결혼이다. 중국은 이런 논리로 포장된 ‘차이메리카론’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이유도 조목조목 내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그의 저서 ‘담대한 희망’에서 중국의 도전에 전략적으로 대비하는 군사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쓴 바 있으며, 게이츠 국방장관은 취임 전 청문회에서 중국을 미국의 주요 위협국가의 하나로 적시했음을 지적한다.
또, 중국은 아직 미국과 동급의 경제수준이 절대 아니라고 주장한다. GDP는 미국의 1/5, 1인당 GDP는 1/13, 국방예산은 미국의 7.51%, 첨단 영역에서의 과학기술 수준은 미국보다 10~20년 뒤처져있음을 강조한다. 이런 중국이 어떻게 미국과 대등할 수 있냐고 반문한다.
중국이 ‘차이메리카론’에 휩쓸리면 그 동안 쌓아올린 외교 성과를 모두 잃고 국제적으로 고립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개발도상국들이 모두 중국에 등을 돌릴 것이라는 논리다. 또한 EU, 일본, 러시아 등의 강대국 모두 미·중 양극 체제를 절대 환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렇다고 과연 중국이 미국이 먼저 내민 손을 잡지 않을까? 그럴 일도 없을 듯하다. 최근 중국이 미국 국채 매입에 다시 나섰다는 소식도 이를 반증한다.

한국은 이 용과 독수리의 싸움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까. 여러분이 올린 생각을 ‘GO! CHINA’의 토론방 '한국이 보는 중국 중국인'에서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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