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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장 파파라초다!

중앙일보

입력

요즘 온갖 종류의 파파라치가 뜨고 있다는 건 잘 알 것이다. 학원 불법영업을 잡아내는 학파라치를 비롯해, 차량 법규 위반을 잡아내는 카파라치, 쓰레기 불법투기를 잡아내는 쓰파라치, 불법 사채업자를 잡아내는 사파라치, 심지어 땅 투기를 잡아내는 토파라치까지, ~파라치의 행렬엔 끝이 없다.

그 행렬의 끝에 K과장이 끼어들었다. 그것도 단독으로! 그래서 무엇무엇~라‘초’다. 대한민국 최초의 회파라치인 그지만, 그렇다고 회장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사진 따위를 찍는 행위를 하는 건 아니다. 더욱이 회장을 병적으로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스토커는 더욱 아니다. ‘그으~ 관심사’는 어디까지나 공적’인 데 있기 때문이다.

‘공적’이라고 하니 거창한데, 어디까지나 회장이라는 직위를 가진 사람이기에 관심을 갖는다는 뜻이다. 그런다고 회장이 포상금을 내릴 것도 아닌데, 왜 이 일에 관심을 갖느냐고? 관심으로 말하자면, 완전히 사적’인 이유 때문이다. 에~, 성공을 하고 싶은데, 회장을 통해 성공의 비법을 익히겠다는 뜻이다.

회장의 비법을 익히곤 싶은데, 회장이 가르쳐주질 않으니, 아니, 가르쳐주실 시간적 여유가 없으시니, 내가 일방적으로 연구해서 배워보겠다, 이런 의도라는 것이다. ‘아하! 뜻은 가상한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맞다.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K과장, 당연히 회장에 관한 X파일을 관리하고 있다. 신문이면 신문, 잡지면 잡지, 국내외 어떤 매체에건 회장이 관련된 기사는 모두 수집해서 차곡차곡 모아둔 것은 물론, 이것을 모두 스캔해서 늘 노트북에 넣고 다닐 정도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회사 내에서 구할 수 있는 회장 관련 정보도 모두 수집 관리하고 있다.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하는 그로서는 회장에 관한 정보에 접근하는데 많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경영지원본부 총무팀이나 회장 비서실 등 회장에 관한 정보에 근접한 부서에 근무하는 동기 또는 선후배의 도움을 받아, 가능한 실시간으로 회장의 회의석상 발언 내용 따위를 수집해서 입력을 해두는 식이다.

이렇게 회장 관련 정보를 캐고 다니다 보니, 당연히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급기야 타사가 위장 취업시킨 ‘X맨’이라는 오해를 받은 결과, 감사실의 조사를 받기에 이르렀으니. 다음은 감사실의 조사보고서 마지막 부분이다.

‘타사의 정보원은 아닌 것으로 추정됨. 하지만, 회장님 관련 정보가 너무 방대하고 상세해서 경쟁사로 넘어갈 경우에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되므로, 좀 더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함.’ 그래~서! 감사실이 제안한 대안은? ‘회장 비서실 또는 경영지원본부 총무팀의 회장기록 관리 담당!’

그렇게 해서, 경영지원본부 총무팀 회장기록 담당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요즘? 자서전 발간 건으로 그리고 회장님 기록관 설립 관계로 가끔씩 개인면담까지 하는 관계가 되었다! 특히 자서전 대필 작가와 일정을 맞추기 어려운 관계로, 회장님으로부터 틈틈이 구술기록을 받는 일을 맡게 되었으니,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맘껏 물어보고, 여간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 아닌가!

미친 놈 취급하던 친구들로 이쯤 되고 보니, 이제는 더 이상 ‘잠이나 자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 출세하는 거 시간문제겠다는 눈치다. 은근슬쩍 회장님에게 민원을 들이대는 놈들마저 생겼으니, ‘학실이’ 뭔가 조짐이 좋긴 하다.

그러나 정작 K과장은 이 회사에서 성공할 생각이 없다. 이유는? 비법만 전수받으면, 나도 회장이 되어보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쳐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모시는 회장처럼 월급쟁이보다는 자수성가한 회장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K과장이 싹수가 보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회장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회장에 관한 평가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회장이 내리는 결정의 내용을 늘 분석하고, 그것이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 성공으로 귀결되었는지 실패로 귀결되었는지를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매 결정과 관련해 자신이라면 어떻게 결정내릴 것인지를 대입시켜 평가내리는 일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일종의 예행연습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그가 사용해온 평가양식이다.

K과장은 말한다. ‘회사에서 내가 배우고 싶은 것 맘껏 배우면서, 오히려 월급 받으려니까 미안한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가 회사에서 배운다는 것이 바로 ’회장 수업‘이다. K과장이 앞으로 자수성가한 회장의 꿈을 이룰 수 있을 지, 아무도 장담할 순 없다. 하지만, 이 야심만만한 친구는 뭔가를 이룰 것이 분명하다.

바닥을 기면서 박이 터지게 싸우기보다는 우회로를 택해 회장님과 직접 소통을 시도한 K과장! 의도한 것이건 아니건,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점은 높이 평가해줘야 할 듯하다. 비장의 우회로로로!!!

이종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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