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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까지 드러낸 ‘예수 이름으로 200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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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겟세마네 동산에 있는 만국교회. 예수가 엎드려 기도를 했다는 바위가 교회 안에 있다. [중앙포토]


첫 방송을 탄 지 꼬박 10년 만이다. 독일 제1방송 ARD에서 공동제작한 ‘그리스도교 2000년’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베네딕도 미디어에서 판권 계약을 체결, DVD 묶음으로 국내에 들여왔다. 4장의 DVD(한 세트 5만원), 총 12부작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그리스도교 2000년 역사에 대한 ‘총정리’인 셈이다.

방영 당시, 독일에서의 파장도 컸다. 1999년 11월부터 2006년 2월까지 방영된 이 시리즈를 독일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봤다. 지금껏 번역된 언어만 30개에 달한다. 그리스도교 역사에 대한 단편적인 정리물이 아니다. 제작을 위해 독일의 가톨릭 신학자들과 개신교 신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역사적 사건의 배경과 관점에 대한 ‘뜨거운 토론’을 거친 후에야 ‘그리스도교 2000년’에 대한 윤곽이 잡혔다. 독일 출신의 노사제인 임세바스찬 신부(베네딕도 수도회)는 “TV 방영 때 독일에 있는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와 가톨릭 성당에서 교회사에 대한 세미나가 앞다투어 열렸다. 수많은 사람이 여기에 참석하는 등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설명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성묘교회 [중앙포토]

◆역사 속 예수, 성서 속 예수=그동안 그리스도교 관련 국내산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더러 있었다. 그러나 선정적인 제목과 빈약한 내용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스도교의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기 일쑤였다. 이에 비하면 ‘그리스도교 2000년’은 격이 다르다. 편당 17~42분씩 구성된 12부작 시리즈에선 그리스도교가 꿈틀대는 역사, 하나의 생명체로 다가온다.

시리즈 제1부 ‘예수에서 그리스도로’는 이런 멘트로 시작한다. “예수 자신은 글로 된 것을 남기지 않았다. 우리가 아는 것은 모두 그의 친구들의 기억에 의한 것이다. 한참 후에야 이 글들이 한 권의 책, 즉 『신약성서』가 됐다.” 간단찮은 시선이 느껴진다. 그러니 ‘단순한 그리스도교 홍보물’쯤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시리즈는 역사가와 신학자의 관점을 두루두루 관통한다. “예수 탄생의 정확한 날짜에 대해선 논란이 분분하다. 예수의 탄생이 당시 역사가들에게는 언급할 가치가 없는 일이었다”며 ‘정확하지 않은 날짜’의 배경을 설명한다. 또 복음서 가운데 유일하게 ‘동방박사의 경배’와 ‘헤로데 왕의 유아 살해’를 언급하고 있는 『마태오복음(마태복음)』에 대해선 강하게 물음을 제기한다. “복음서에는 헤로데왕이 새로 태어난 남자 아이를 모두 죽였다고 한다. 그런데 역사가들의 기록에는 이 대량 학살을 추측할만한 기록이 전혀 없다. 또 예수가 헤로데 집정 당시에 태어났다는 것도 확실하지는 않다”며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실제 예수’와 ‘성서 속의 예수’사이의 간격도 조심스럽게 짚어간다.

◆그리스도교 역사의 빛과 어둠=그리스도교의 명암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돈을 가장 많이 내는 성직자에게 고위 성직을 팔았던 ‘중세의 치욕’도 주저 없이 밝힌다. 바티칸 시티의 성 베드로 성당 건축비를 마련할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돈으로 고위 성직을 산 뒤, 신도들에겐 돈을 받고 면죄부를 팔았던 것이다. 시리즈에선 그걸 “신도들의 불안을 이용한 꽤 수지맞는 사업이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처럼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되새겨 볼만한 ‘종교적 풍경들’이 ‘그리스도교 2000년’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렇다고 ‘비판’과 ‘지적’으로만 시리즈가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타락한 교황권에 맞섰던 회개의 목소리, 마르틴 루터를 통한 종교개혁의 역사, 그리스도를 향한 수사들의 숭고한 정신 등도 상당히 무게감 있게 다루고 있다. 또 산업혁명 시기에 새롭게 등장한 노동자 계층을 위해 당시 교회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점도 통렬하게 지적한다.

‘그리스도교 2000년’ 시리즈는 예수의 탄생에서 시작해 로마의 국교화, 동서로 나뉘는 가톨릭 교회, 쇠망해가는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도의 콘스탄티노플 장악, 교황권의 세속화와 타락, 루터의 종교개혁, 프랑스 혁명, 히틀러의 학살과 교회, 스탈린의 무신론적 독재주의 등을 거쳐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다루고 있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힘을 합해 만든 초교파적 역사물이다. 두고 두고 볼만한, 그리스도교 2000년에 대한 ‘역사교과서’다. 문의 054-971-0630(베네딕도미디어), www.benedictmedia.co.kr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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