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원의 전통미학 탐구…조경학자 민경현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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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경원대 민경현 (조경학.65) 교수의 처음 전공은 숲을 연구하는 임학. 10여년 잣나무를 대하다 그 특유의 생명력에 눈을 떴다.

또 연록색으로 꽃망울을 터뜨리고 흰색으로 개화했다 주황색으로 시드는 인동꽃에서 우주의 신비를 읽었다.

그리고 문화재 전문위원 등을 거치며 땅과 문화재를 전체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안목을 길렀다.

최종 기착점은 정원 (庭園) 으로 상징되는 우리 옥외공간의 미학 탐구. 지난 20여년간 자료를 섭렵하고 국내외 사적지를 답사하며 한국 정원의 아름다움과 기법, 그리고 사상적 배경을 두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신간 '숲과 돌과 물의 문화' 와 '주 (主).종 (從).첨 (添) 과 부등변 삼각의 미' (도서출판 예경刊) .전에도 건축물로서 정원을 소개한 책은 있었으나 그 바탕의 정신적 요소를 천착한 경우는 드물었다.

책에는 선사시대부터 근세까지 각종 정원이 시대별.유형별로 분석된다.

선돌.고인돌에서 시작해 고조선 천단, 삼국시대 도성, 고려시대 궁원, 조선시대 관가까지. 산성.고분.사원.누각.서원.민가 등 다양한 공간문화를 짚었다.

저자는 특히 한국 정원의 생태학적 아름다움을 주목한다.

인공과 자연을 결합하되 자연공간을 살린 지혜를 높이 사는 것. 중국은 실경 (實景) 보다 크게 꾸며 권위적이고 과장된 분위기가, 일본은 실경보다 작게 추상적으로 다뤄 강한 인공미가 풍기는 반면 한국은 최소한의 손길을 더해 자연과 인공의 분간이 어려운 중용의 색깔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장의 한국 도자기론과 비슷하다.

현존하는 1천여곳 유적 가운데 동일한 구성의 정원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단적인 보기. 자연 (主) 을 따르되 (從) 최소한의 인공을 가하는 (添) 원리다.

예로 5세기초에 조성된 고구려 안학궁 궁원은 담장 안팎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융화됐다. 한국 정원은 대칭과 비례를 고집하는 서양과도 확연히 구분된다.

이른바 부등변 삼각의 원리. 좌우 정형대칭을 생명으로 하는 이탈리아식 정원과 달리 건물.석조물.나무.분수 등을 이질대칭함으로써 환경친화적 문화를 일구어냈다는 것. 서로 다른 모양의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이나 한쪽은 막고 한쪽은 터버린 조선시대 종묘 태실 (太室) 동서쪽 건물의 벽면처리가 그렇다.

조형원리보다 생태원리가 앞섰다는 뜻. 저자는 그 사상적 기저로 음양, 천.지.인 삼재 (三才) , 풍수.신선 등 전통사상과 유가.불가 등 외래사상의 조화를 꼽고 있다.

그리고 선인들의 의장기법을 현대사회에 접목해 쾌적하고 인간적인 생활공간을 만들려는 활발한 노력도 당부한다.

다만 일반 독자를 위해 한자용어에 한글표기를 덧붙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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