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대선자금 모금 이석희씨 '주역'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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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검찰이 국세청 수뇌부에 의한 한나라당 대선자금 불법모금 사건과 관련해 이석희 (李碩熙) 전 국세청차장이 모은 대선자금의 일부 윤곽과 관리 수법을 밝혀내는 등 수사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검찰은 지금까지 수사 결과 李씨가 임채주 (林采柱) 전 국세청장이 모은 38억원과는 별도로 최소한 15억원을 예치했던 비밀계좌를 찾은데 이어 李씨가 대선 자금을 거둬들인 20개 기업 명단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사 결과 李씨는 林씨처럼 기업과 한나라당측을 은밀하게 연결시켜주고 빠지는 '매파' 역할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비밀 차명계좌를 이용, 조성한 자금의 돈세탁 및 중간 관리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국세청 대선자금 모금의 주역인 李씨는 지난해 11월 고교 동기인 서상목 (徐相穆) 의원으로부터 한나라당 대선자금 모금을 부탁받자 당시 林청장에게는 5개 회사만 맡기고 1백대 기업중 나머지 업체는 본인이 직접 맡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개입을 꺼려하던 林씨는 직접 돈을 만지지 않고 기업과 한나라당측 관계자들을 직접 연결시켜 주는 방법을 썼다.

장소도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지하 주차장이나 호텔방 등을 이용케 했으며 특히 기업 관계자가 현금이 든 사과박스 등을 미리 지정된 곳에 놓고 가면 나중에 徐의원 등 한나라당 관계자가 찾아가도록 하는 치밀한 접선 수법을 썼다.

이에 비해 李씨는 비밀계좌까지 만들어 놓고 적극적으로 모금활동에 나섰다는 게 검찰의 설명. 당초 李씨 역시 돈을 직접 만지기를 꺼려했으나 일부 기업이 건넨 수표를 돈세탁하거나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직접 받은 거액의 현금을 잠시 보관하기 위해 차명계좌 등을 이용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李씨는 지난해 11월 역시 고교 동기인 모 은행 출장소장 임모씨의 주선으로 임씨 가족 명의로 차명계좌 3개를 개설했다.

또 이와는 별도로 다른 은행에서 徐의원 명의의 계좌를 개설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임씨 관리계좌에 11억여원, 徐의원 명의 계좌에 4억원 등 약 15억원이 입금된 뒤 며칠만에 모두 인출된 사실이 검찰수사에서 드러났다.

특히 林씨가 관리한 계좌에는 안기부를 통해 한국통신 등 공기업으로부터 모금된 한나라당 대선자금 3억원이 입금된 사실까지 확인됐다.

이 때문에 검찰은 李씨가 자신과 林씨가 모은 대선자금 외에도 한나라당이 다른 경로를 통해 모은 대선자금도 세탁 해주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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