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험문제까지 빼돌렸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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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액 '족집게' 과외 사건이 하루가 다르게 의혹의 폭을 늘리고 있다.

일부 교사가 문제 학원의 알선책을 맡았다는 혐의도 놀라운데 이제는 학기말 시험이 다가오면 현직교사가 학원강단에 서서 직접 강의하기도 하고 심지어 기말고사 시험지를 학원생들에게 풀도록 했다는 놀라운 증언까지 나오고 있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아직까지는 의혹 수준이다.

그러나 이는 2002년부터 도입될 내신 무시험 대입전형의 기본틀을 흔드는 중대한 사안임을 직시해 수사당국은 빈틈없는 수사를 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악용하려 들면 빈틈이 생기게 마련이다.

내신 고액과외가 성행하고 시험지 유출 같은 믿을 수 없는 의혹이 이미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면 무시험전형 같은 제도는 도입하려야 할 수가 없고 공교육 자체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내신성적에 의한 무시험 대입전형이란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주고 입시에 찌든 학생들에게 광범위한 인성 (人性) 교육을 하자는데 도입 취지가 있다.

그러나 지금 일고 있는 의혹처럼 내신 고액과외가 은밀히 성행하고 교사가 학원에서 시험문제를 학생들과 함께 푼다면 입시위주 교육을 개혁하기 위한 무시험전형이란 게 무슨 의미를 지닐 것인가.

교육의 기본을 흔드는 주범이 이들 소수 학원 모리배다.

그들과 교사들의 유착관계가 어떤 형태로 얼마나 깊이 스며들어 있는지 수사당국은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

보도에 따르면 학원비리가 강남 일부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한다.

폭넓은 수사와 심도 깊은 추적을 통해 진행중인 비리의 씨앗을 이같은 기회에 근본부터 잘라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숱한 교육비리를 접해 왔다.

며칠동안 세상을 들끓게 하고는 언제 그랬냐는듯 사라지는 게 교육계 비리다.

이래서는 비리의 원초적 고리를 끊을 수 없다.

감시.고발기능까지 경찰에 맡길 수는 없다.

해당 교육청이란 게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학원비리가 나올 때마다 관계당국은 언제나 인원부족 타령만 하고 뒷짐을 진다.

교육의 근간을 흔드는 비리 감시보다 더 중요한 교육청 일이 있을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선 전체 인원을 동원하든지, 부족한 인원을 채워서라도 미리 미리 감시 기능을 강화했다면 비리의 폭이 커지려야 커질 수가 없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이 점을 깊이 유의해 사전 감시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다행히 아직도 학교엔 수많은 선의의 교사들이 묵묵히 교단을 지키고 있다.

이들 교사가 기죽지 않고 학교를 지키게 하기 위해서도 이번 수사는 옥석을 가리는 확실한 계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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