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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잡종이지?" 혼혈의 슬픔을 아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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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잡종이지?”

당황했다. 무서웠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 지하철 안에서 한 취객이 김은희 양(연세대 정치외교학)에게 던진 말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의 남녀 결혼이민자 숫자는 지난 5월말 기준으로 127개국, 17만 2353명으로 집계됐다. 점차 증가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에서 혼혈에 대한 두려움은 크기만 하다.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남과 다르다는 점은 큰 고통으로 찾아온다. “어린 시절에는 친구가 없었어요. ‘왕따'를 당한 거죠.” 은희 양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은 아픔으로 남았다. 남과 다른 이목구비 그리고 피부색이 왜 놀림감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은희 양의 할아버지는 라틴계열의 영국인으로 한국인인 할머니와 결혼했다.

“할아버지는 한국을 사랑하셨어요. 그래서 할머니와 결혼하셨고요.” 할아버지가 사랑한 한국이 그의 손녀에게는 아픔을 준 것이다. 지난 16일 월드미스유니버시티의 합숙 첫 날. 자기소개 시간에 은희 양은 자신의 혼혈을 당당하게 밝혔다. 또한 다른 친구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제가 좀 낙천적이에요. 그래서 괴로운 기억은 금방 잊어버려요. 언젠가부터 그렇게 변하게 되더라고요.”

“성형 수술 아니에요 자연산이에요.”

뚜렷한 이목구비에 작은 얼굴, 하지만 말투는 정겹다. 어린 시절을 대구에서 보낸 은희 양은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가장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은 ‘김치’다. 태극기를 보면 가슴이 뭉클하고 목이 터져라 한국을 응원하며 월드컵을 봤다.

“느끼한 음식 잘 못 먹어요. 당연히 한국 음식을 좋아하고요. 전 분명 한국 사람인데 한국음식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요?” “대학에 처음 입학 했을 때 혼혈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어느 날 기숙사에서 자고 있는데 사람들이 제 코랑 쌍꺼풀을 만져보더라고요. 성형수술을 했나 확인해 본거였데요.”

혼혈로 인한 에피소드를 묻는 질문에 가볍게 웃으며 말한 은희 양의 답변이다. “합숙훈련에 와서 좋은 점은 친구가 많아졌다는 거예요. 늘 친구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많은 친구들 속에서 같이 생활하고 호흡하니까 너무 좋아요. 친구들도 잘 해주고요.”

더 이상 혼혈을 숨기지 않는다는 은희 양. 어쩌면 그녀에게 혼혈에 대한 에피소드를 묻는 기자의 질문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혼혈에 대한 한국 사회의 냉대를 비판하며 정작 당사자에게 에피소드를 묻다니...

뉴스에는 연일 다문화 가정에 대한 소식이 나오고 기획 프로그램 역시 종종 제작된다. 아마도 아직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 가정이 살아가기엔 어려움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그들이 한국을 사랑하는 만큼, 그들의 가슴이 태극기보면 뭉클해지는 한, 한국 사회가 적어도 그만큼은 그들을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뉴스방송팀 최영기, 강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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