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로 경북 고추 농가 피해 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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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경북 영양에서 40여년째 고추농사를 짓고 있는 조선기 (趙先基.54.일월면도계1리) 씨는 바빠야 할 농번기에 할 일이 없어졌다.

이번 수해로 고추뿌리가 썩으면서 무름병.탄저병.역병으로 고추나무들이 온통 벌겋게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趙씨의 고추밭은 1천5백여평. 지난해만 해도 고추 4천근을 수확, 1천여만원을 마련했으나 올해는 3근을 딴 것이 전부다.

식구들이 먹기에도 부족한 양이다.

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趙씨는 "고추로 1천만원을 손해 봤으니 당장 갈아엎고 배추라도 심고 싶지만 배추 역시 판로가 막혀 있으니 속이 상해 소주잔이나 기울인다" 고 말했다.

이 동네 고추농가 86호 대부분이 趙씨와 사정이 비슷하다.

의성군봉양면분토1리 신광수 (申光洙.61) 씨는 올 고추 수확량이 지난해의 5분의 1 밖에 안된다며 "이 정도라도 수확한 게 이웃에 비하면 형편이 좋은 편" 이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는 "빨갛게 익은 고추에 손을 대면 잔뜩 물먹은 채로 땅에 툭 떨어지는 걸 보면 애간장이 녹는다" 며 "앞으로 살 일이 막막하다" 고 걱정했다.

영양.의성은 물론 경북도 (전국의 30% 생산) 내 고추생산의 60%를 차지하는 경북 중북부의 안동.청송.봉화 등 고추 주산지들이 올들어 일조량이 준데다 두차례 수해로 유례없는 흉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전국 최대 고추 생산지인 영양.청송은 습해로 인한 각종 병해로 지난해 수확량의 50~70%정도 감수될 전망이다.

영양군의 경우 고추 재배면적 1천8백여㏊ 중 60% (1천1백여㏊)에서 고추나무가 썩는 탄저병과 말라주는 역병이 생겼을 정도다.

경북도 관계자는 "고추농가가 이번 만큼 광범하게 대규모 피해를 입기는 처음" 이라며 "재배면적의 30%가 넘게 피해를 입은 농가에 대해서는 농업재해대책법을 적용, 구호비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고 말했다.

햇고추값은 이처럼 주요산지 생산량이 급감하는데다 중간상들의 사재기까지 겹쳐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지난해 1근에 2천5백원 하던 고추값은 30일 영양에서 5천6백원까지 뛰었다.

경주지역 재래시장에선 한때 7천원까지 치솟았다.

현지 주민들과 상인들은 가격폭등에 산지물량마저 없어 아예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파동이 올 지도 모른다고 걱정이다.

영양.의성 =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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