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재외동포법' 더 다듬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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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25일 법무부가 예고한 '재외동포의 법적 지위에 관한 특례법안' 은 재외 동포는 물론 온 국민이 깜짝 놀란 획기적인 법안이다.

지난해 설립된 '재외동포재단' 이 설립취지와는 달리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특례법안은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새 정부는 수립 이전 대통령선거 공약에서 교민청을 공약했고,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누구보다 교민에 애착을 갖는 분이기에 재임 기간중 획기적인 교포정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따라서 국내인보다 재외교포들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았다.

이러한 시기에 제출된 이번 특례법안은 여지껏 우리 나라에서 실행해 온 교포정책의 입장에서 보아 가위 획기적이라는 말을 붙여도 좋을 정도로 재외교포에게 유리한 새로운 조항이 열거됐다.

이 법안에서 가장 획기적인 것은 새로이 제시된 '재외동포 등록증' 제도다.

이것을 소지하려면 신고와 심사라는 절차를 밟지만, 재외교포가 일단 등록증을 소지하면 출입국 제한, 체류 등에서 내국인과 유사한 법적 보호를 받는 것이니 획기적인 제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특례법안 전부가 기대 이상으로 재외교포에게 유리한 내용이다.

그러나 개중에는 우려되는 면도 있고 보충을 요하는 것도 있다.

이제 이러한 것을 검증하기 위해 특례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크게 4개의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취업과 특정직종에 취업하는 사회적 분야, 경제와 관련된 분야, 사회복지와 관련된 분야, 그리고 병역 특례에 관한 분야 등이다.

사회적인 분야에서 재외동포는 어떤 직종에도 취업할 수 있으나 단순 기능 근로에서는 제외된다고 했다.

이것은 현재 불법 체류자로 단순노동에 종사하는 중국교포를 염두에 둔 것으로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중국교포들을 의식한 조항이며 불평등한 조항이라 하겠다.

또한 재외교포들이 취업할 수 있는 직종 조항에서 외교.국방.정보.수사.재판 등은 제외한다고 했다.

그러나 재외교포들의 능력을 활용한다면 재외교포는 바로 이러한 외교.정보.수사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소질이 많은 사람들이다.

이들을 이런 영역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실제 교포의 장점을 모르고 설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선거권에서 선거인 명부를 작성하는 날 30일 이상 거주한 자에게 선거권을 주는 것은 좋은 일이나 외국에서 선거권 행사를 하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할 점이다.

경제분야의 재외동포가 국내 토지를 취득하고 매각해 연간 1백만달러를 반출할 수 있게 돼 있다.

이 법안은 재외동포들의 금융거래도 가능하게 했으며 핫머니만 엄격하게 규제한다고 했다.

이것은 모두 재외동포가 요구하는 2중국적에 해당하는 조항으로 재외교포가 '재외동포 등록증' 만으로 2중국적의 소지자와 다를 것이 없게 됐다.

부동산 매각 대금의 무한정한 해외유출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가 미흡한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회보험에 관해 재외교포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으며 공무원연금.국가유공자보상금 등은 외국에 가도 지급받을 수 있는 것이니 사회보험은 2중국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킨 것으로 별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심각한 문제는 병역특례에 있다.

특례법안은 정부 초청 과학기술자 및 경제 관련 공직에 근무할 자는 병역의무를 면제한다고 했다.

이것은 우리 나라가 교포를 선별하고 특혜를 준다는 것으로 여지껏 문제돼 온 특수층 자제들이 악용할 소지를 갖고 있으며 교포들을 분류 차별할 소지를 갖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특례법안은 새 정부의 세계주의 정신과 부합되는 진일보한법안이지만 미국이나 일본 등 부유한 나라의 교포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 중국교포.구 소련교포와 같이 가난한 나라의 교포에게는 해당이 덜 되고, 특히 이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조항이 있어 약자를 보호해야 할 법이 약자를 더욱 심하게 배제하는 꼴이 됐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이 법안이 재외교포에게 권리만을 부여하고 의무조항이 결여된 불공정한 법안이라는 것이다.

국민의 기본의무인 병역의무와 납세의무를 재외교포에게도 명기해 재외교포가 준 국민으로서의 당당한 권리와 의무를 갖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외교통상부.재경부.국방부.보건복지부 등 정부 관련 부처와 협의를 거쳐 법안을 다듬어야 하며, 해외교포를 포함한 교포 전문가와 진지한 연구.검토가 있어야 하겠다.

전체 인구의 10분의1을 교포로 갖고 있는 나라답게 훌륭한 재외동포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광규(재외한인연구회장.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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