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어디로가나] '디플레' 우려가 현실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생산.소비.투자 등 경제전반의 모든 지표들이 사상 최저기록들을 무더기로 쏟아내면서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러다간 회생기반마저 무너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성장 마이너스 4%, 실업자 1백50만명선이 마지노선이라고 주장해 왔던 정부도 이젠 아예 할말을 잃고 있다.

재정경제부와 한국개발연구원 (KDI) 은 내부적으로 급격한 수요감소로 물가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용어 한마디 21면 참조) 이 현실로 다가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소세 인하조치 등에도 불구하고 7월중 도.소매판매와 민간소비가 두자릿수의 감소율을 보이는 등 디플레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가속화되면 정부가 기대하는 내년 하반기 회생은 커녕 장기불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논란을 거듭하고 있는 '경기부양론' 이 설득력을 갖게 된 것도 이같은 사정 때문이다.

KDI의 조동철 연구위원은 "현 시점에서 내수를 적극적으로 부양하지 않으면 실물경제는 회복 불능 상태로 망가진다" 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정부도 명시적으로 경기부양을 한다고 말하진 않지만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구조조정도 중요하지만 지금처럼 계속 기업이 쓰러지면 부실채권 규모가 1백10조원 (6월말 현재 추정치)에서 1백50조원선으로 늘어나 우리 경제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러한 정책변화에는 시기가 중요하다. 현 경제여건은 예기치 않았던 수해에다 일본 경제의 혼미, 중국 위안화 평가 절하 가능성,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대량 해고에 따른 노사분규 등 국내외 변수 모두 어느 것 하나 좋은 게 없다.

2분기 국내총생산 (GDP) 통계를 발표한 한국은행이건, 7월중 산업활동동향을 내놓은 통계청이건 '앞으로도 나아질 요인이 보이지 않는다' 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있다.

하반기 성장률을 최악의 경우 마이너스 10% 가까이로 예측 (금융연구원 - 9.5%) 하는 곳마저 있다.

대부분의 민간 연구기관들은 3개월전만 해도 올4분기에 경기 저점을 지날 것으로 예측했었으나 최근에는 빨라야 내년 2분기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수정하고 있다.

앞으로 상당기간 마이너스 성장과 이에 따른 실업자 증대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불가피하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다. 성장감소가 실물경제의 기반을 붕괴시키는 수준에 이르기 전에, 실업자 증가가 사회불안으로 이어지기 전에 빨리 손을 써야 한다.

이를 위해선 재정이건, 통화건 가능한 정책수단을 총동원해 경제가 어느정도 굴러가도록 하면서 구조조정을 조속히 마무리짓는 수밖에 없다.

박의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