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제2건국-개혁과 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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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건국 50주년을 맞는 8.15 경축식에서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전면적 개혁을 상징하는 '제2건국' 의 기치를 내걸었다.

사회의 총체적 위기에 대한 국민의 정부의 대응이자 결연한 각오의 표출이다.

위기에 처한 경제는 실업률을 폭증시키고 중산층의 생활기반을 흔들면서 한국사회의 존립기반을 저변에서부터 위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국난사태에 대처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고, 재벌과 사회지도층들은 국난 (國難) 을 극복하기 위한 자기희생적 결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상황의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제2건국이라는 말 자체가 갖는 크기에 대해 부담을 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건국 이후의 국가건설과 산업화의 업적을 토대로 한 개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더라도, 제2건국이라는 말은 과거의 성과들에 자족 (自足)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없고, 쌓이고 쌓인 실패의 결과들을 개혁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절박감과 위기감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의 의미와 무게는 개혁 리더십이 그들 자신에게 부과하는 자기구속과 강제의 의미를 갖는다.

다시 말해 제2건국은 국민에게 밖으로 개혁에 동참하자고 호소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국사회의 지도층을 개혁하겠다는 결의를 안으로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오늘의 국난은 그동안 개혁했어야 할 것들을 하지 않았던 정치.경제.사회.교육 등 모든 부문에서의 적폐 (積弊)가 한꺼번에 몰아닥친 체제 실패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김대중정부는 구체제와 그 운영원리를 총체적으로 바꾸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새 체제를 안착시켜야 하는 역사적 과제를 안는다.

개혁의 구체적 내용은 참여민주주의.시장경제.세계주의.노사관계 개혁을 포함하는 국정개혁 6대 과제 속에 집약된다.

그 가운데서도 3중 (重) 의 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는 민주화.시장화.세계로의 개방화가 국정의 기본철학인 민주주의.시장경제 병행발전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구조를 만들기 위한 정치개혁은 아직 시작도 못한 상태다.

또한 국제통화기금 (IMF) 위기의 극복을 위해, 그리고 이를 극복한 이후 국제경쟁력을 갖는 새로운 생산체제를 만드는 경제개혁의 전망은 불투명하고 구조개혁은 이제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노사정간의 갈등관계로부터 새로운 협력적 관계로의 전환은 이제 겨우 그 룰이 만들어졌을 뿐이다.

실업의 증가와 빈곤의 확대에 대한 사회안전망의 구축은 매우 취약한 상태다.

국정과 사회의 총체적 개혁에 대한 시민사회에서의 합의는 광범하며, 그것이 밑으로부터의 개혁요구로 분출하고 있지만 사회지도층내의 균열과 개혁의지 부족으로 국민들은 기대와 실망을 함께 느끼는 혼란스러움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서 개혁의 방법은 분명하다.

제2의 건국은 무엇보다도 사회에서의 운동이기 이전에 '위 자체의 개혁' 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관료 엘리트를 비롯해 정부 상층부와 재벌, 그리고 국회와 정당이 가장 먼저 변해야 한다.

19세기말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작가 람페두사는 "변화당하지 않으려면 먼저 변해라" 고 사회의 기득층에 말했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자세가 요구된다.

'위 자체의 개혁' 이 가시화될 때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뒤따를 것이다.

시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개혁에 동참하게 되는 것은 지도층의 개혁을 확인하는 바로 이때부터다.

관변 (官邊) 운동이 효과를 발할 수 있던 시대는 지났다.

사회는 다양화.개성화됐고 자발성과 자율성이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

비자율적인 방법으로 자발적 창의성이 넘쳐흐르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다.

제2건국은 먼저 개혁의 프로그램으로 제시되고 실천될 때 비로소 전국적인 국민운동으로 질적 전환을 하게 될 것이다.

'위 자체의 개혁' 이 선행될 때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시민운동은 제2건국운동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지 않겠는가.

최장집(정책기획위원장.고려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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