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지불유예 연장 파장]외국인 투자가 된서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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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러시아 정부가 19일로 예정됐던 지불유예 (모라토리엄) 선언의 세부사항 발표를 24일로 연기함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총외채 통계조차 '국가기밀' 로 보안을 지키는 바람에 정확한 실상이 파악되지 않아 국내외 관계자들이 모두 허둥대고 있다.

◇모라토리엄의 내용 = 러시아 정부가 지금까지 밝힌 내용은 단기국채 (GKO) 의 거래를 전면 중단시키고 ▶1백80일 이상의 기한으로 빌린 채무 ▶보증기관들의 구상 (求償) 채무 ▶통화 선물 거래에 대한 지불을 90일간 연기한다는 것이다.

세르게이 키리옌코 총리는 20일 각의를 주재한 뒤 "이번 조치는 완전한 채무상환 불이행 (디폴트) 사태를 막기 위한 최후의 노력" 이라고 말했다.

그는 19일 "국내 부채를 앞으로 3~5년간 정부채권 매각방식으로 상환할 것" 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정부가 GKO를 3~5년짜리 중기 국채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현재 외국인 소유분에 대해서는 달러 표시 국채로, 내국인은 루블화 표시 국채로 바꿔주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 부채의 10%를 우선 변제하고 나머지를 연리 30%의 만기 4~5년짜리 채권으로 전환시키자는 안을 놓고 강경.온건론이 맞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정부는 올 연말까지 1천1백30억루블 (약 1백61억달러) , 내년에 2천6백억루블 (3백71억달러) 의 채무를 갚아야 한다. 반면 외환보유고는 1백51억달러에 불과하다.

한편 90일간 지불이 유예된 민간부채에 대해선 어떤 후속 발표도 없는 상태다.

◇국내외 반발 = 이번 조치가 내부조율 없이 급하게 발표된 탓에 러시아내에서도 반발이 거세다.

러시아 최대 은행이자 GKO 발행액 가운데 35%를 갖고 있는 스베르 방크와 대표적 석유업체인 아오룩오일사 (社) 는 19일 정부방침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GKO를 억지로 떠안았던 은행들도 타격받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나 가장 가슴을 졸이는 사람은 외국인 투자자들이다.

GKO가 달러화 표시 국채로 전환될 때 루블화 가치가 환율 변동폭 상한선 (달러당 9.5루블) 까지 폭락한다면 이것만으로도 33.7%의 손실을 입게 된다.

여기에다 채권전환 조건까지 나쁘면 GKO 액면가의 11%밖에 회수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도이체 방크.JP 모건이 세부계획 발표에 제동을 걸고 러시아 정부와의 협상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루블화 가치는 이날 중앙은행의 시장개입에도 불구하고 20일 달러당 6.995루블로 밀렸으며 주가는 1.82% 하락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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