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한·EU FTA 타결은 경제성장의 오아시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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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EU와의 FTA가 발효되면 관세철폐율은 즉시 또는 3년 안에 우리나라는 96%, EU는 99%로 각각 높아진다. 그 평가는 엇갈리나 최대 수혜 업종이 자동차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양측 모두 1500㏄를 초과하는 차는 3년, 1500㏄ 이하 소형차는 5년 이내에 현행 관세를 모두 철폐해야 한다. 수입 관세는 EU가 한국보다 2%포인트 높은 10%. 따라서 관세가 철폐되면 EU보다는 한국 기업들이 더 큰 가격 인하 효과를 누리게 된다. 유럽에서 판매되는 한국 차의 상당 비율이 국외 공장에서 생산됐다는 이유로, FTA의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마케팅 비용 등에서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자동차 업계의 영업환경은 호전될 것이다.

FTA로 인해 가장 큰 피해가 우려되는 품목은 역시 농산물이다. 특히 축산농가의 시름은 깊다. 프랑스와 벨기에 등으로부터 수입하는 유럽산 돼지고기는 연간 20만t. 우리나라 돼지고기 시장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치다. 치즈나 유제품 수입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과와 배 역시 국내산 대비 최고 50%까지 저렴하고 닭고기는 거의 절반 수준이다. 탈지분유도 국내산보다 31% 정도 싸다. 또 EU와의 교역에서 2004년 이후 적자를 보이고 있는 서비스는 금융, 사업서비스, 특허권 사용료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을 중심으로 EU의 한국시장 진출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FTA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뜻은 확고하다. 수출 의존도가 어느 나라보다 높은 한국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게 이유다. 다자무역 체제인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이 정체되고 글로벌 경제위기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양자무역의 틀인 FTA의 전 세계 확산을 통해 경제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게 정부의 뜻이다. 우리나라의 대외통상 전략적 측면에서 이번에 타결된 한·EU FTA의 중요성은 과소평가할 수 없다. 우리가 수출을 많이 하는 주요 교역국이라는 점보다도, 우리나라가 보호주의를 배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에 알리는 측면보다도, 성장 동인이 소진되고 고용창출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그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FTA를 통한 무역 증대 효과는 자동차·전자 등 ‘강자’ 산업에는 크게 돌아가지만 ‘약자’ 산업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강자의 혜택이 약자가 희생한 대가라면 강자가 취한 득은 모두와 나눔이 마땅하다. 또한 역진방지, 미래 최혜국대우 보장, 투자자 국가소송 등 이른바 ‘독소 조항’ 존재 여부에 대한 시비가 제기되고 있다. 그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해 일리 있는 우려는 해소해야 한다. EU 시장을 제대로 공략하기 위해 환경·안전·위생 등 비관세장벽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것도 시급하다.

한·EU 협정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국가를 어떻게 설득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상대방에 대한 진정성”과 “상대로부터의 인정”을 비결로 꼽았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로부터 비준 동의를 얻기까지 정부는 대통령이 말한 그 진정성으로 국민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왕상한 서강대 교수·국제통상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