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대통령의 사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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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독립전쟁의 영웅' 으로 불리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결혼한 것은 27세때인 1759년이었다.

상대는 큰 재산을 상속받은 동갑내기 미망인 마르타 커스터스였는데 그녀에게는 두 아들이 딸려 있었다.

하지만 워싱턴은 재산을 관리하고 불려나가는 데 정직하고 성실했으며, 두 아들에게는 자상한 아버지였다.

결국 이들 부부는 워싱턴이 67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해로 (偕老) 했다.

워싱턴에게연인이 있다는 뜻밖의 사실이 슬금슬금 불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독립전쟁때였다.

영국 신문들이 터뜨린 이 소문은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었다.

약혼을 하고 결혼을 앞둔 그에게 샐리 페어팩스라는 이상적인 여성이 나타났고, 이들은 그후 수십년 동안 사랑의 편지를 주고받은 것이다.

문제는 그녀가 워싱턴과 가장 친한 친구의 부인이었다는 점, 그리고 편지 가운데는 성관계를 가졌음을 암시하는 대목이 상당부분 포함돼 있었다는 점이다.

독립전쟁 직전 미망인이 돼 영국에서 살던 페어팩스에게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마운트 버넌에서 함께 살자고 호소한 편지도 있었다.

훗날 대통령에 오른 워싱턴이 이 일에 대해 어떤 입장이었는지 기록으로 남아있지는 않다.

설혹 성관계에 대한 구체적 증거가 나타났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자 (瑕疵)가 되기에는 그의 업적이 훨씬 컸으니 걸림돌이 되지 않았을는지 모르지만 그 일은 두고두고 '독립전쟁의 영웅' 에게 흠집으로 작용했다.

그렇다면정신적인 사랑과 편지만을 주고받는 이른바 '플라토닉' 에서 그쳤다면 어땠을까. 워싱턴으로서는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고, 대통령만 되지 않았던들 유야무야 덮였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의 인격과 도덕률은 보통사람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어야 한다는 보편적 인식이 그런 정도조차도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사생활' 의 폭이 훨씬 좁아지게 되는 것도 그 까닭이다.

연방대배심 증언을 통해 르윈스키와의 '적절치 않은 관계' 를 시인하고 국민에게 사과한 클린턴 대통령은 "대통령에게도 사생활이 있다" 는 말로 여운을 남겼다.

'적절치 않은 관계' 는 궁금증만 더욱 증폭시키고, '사생활' 부분은 그것을 보통사람 수준으로 넓혀야 한다는 뜻인지 혼란스럽게 한다.

어쨌거나 우리로선 "모름지기 대통령은 그래서는 안된다" 는 '반면교사' 로나 삼을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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