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러시아 경제]우리경제에 미칠 파장과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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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이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과 동남아 외환위기에 이어 일본.중국 경제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터진 러시아 사태로 인해 금융 공황이 전 세계로 확산되지 않을 까 하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특히 경제회생에 나선 한국의 노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본지는 경제전문가 3인이 참석하는 긴급좌담회를 마련했다.

이들이 분석하는 사태의 파장과 우리의 대처방안을 들어본다.

▶사회 :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지만 러시아가 모라토리엄 선언과 루블화 평가절하를 단행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세계 경제가 파국으로 가는 조짐인가요.

▶李원장 : 아직 그렇게까지 얘기할 단계는 아닙니다.

그러나 동남아.한국.일본.중국 등 아시아 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러시아까지 연쇄적으로 문제가 터져 상승효과를 낳으리란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게 사실이죠.

▶사회 : 러시아가 모라토리엄 선언까지 하게 된 이유를 어떻게 보시는지.

▶兪위원 : 외환위기에서 시작됐으나 근본원인은 러시아의 재정적자 때문이죠. 러시아 정부가 적자를 만회하려고 무리수를 쓴 탓입니다.

재정위기의 원인으로는 러시아의 지하경제가 번창하고 세금 안내는 소득이 많았던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정부의 관리능력.리더십 부재가 문제지요. 아직은 러시아 국내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李 : 러시아의 개혁입법이 통과되지 않고 옐친 정부와 공산당간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사회 : 러시아 사태의 파장을 짚어봅시다. 90일간 지불유예가 단기적으로 어떤 파장을 불러올까요.

▶李 : 러시아의 공공채무 2천억달러중 루블화 외채는 6백20억달러 정도입니다. 러시아의 대외지불 능력이 완전히 바닥났다고 볼 수는 없어요. 루블화를 평가절하하면서 단기자본이 빠져나갈 우려가 커 모라토리엄이란 처방을 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아요.

▶兪 : 러시아는 동유럽에 많은 위성국가를 거느린 나라입니다.

사회주의 국가는 내부거래가 많죠.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은 동유럽 국가에 상당한 타격을 줄 겁니다.

동유럽을 신흥시장으로 꼽고 활발히 진출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이런 점에서 영향이 있겠죠.

▶사회 : 러시아 사태와 최근의 엔화약세.위안화 위기 등이 연관을 맺지 않을까요. 독일 등이 아시아에서도 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은 어떻게 보십니까.

▶兪 : 아무래도 국제금융시장에 심리적 불안감이 커지겠죠. 러시아에 꿔준 자금이 상당기간 묶이면 신규자금 공급이 어렵지 않겠어요. 일본이 동남아에 1천억달러를 물렸지만 그 자체로 일본의 타격이 크지 않았던 예로 보면 독일도 직접적인 타격은 심각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국제금융시장에 미칠 심리적 악영향이 문제죠.

▶사회 : IMF는 재원이 바닥 나 사태수습에 적극 나서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요.

▶兪 : IMF의 출연금 2천억달러는 이미 거의 바닥 났고 미국에 1백80억달러를 추가 출연토록 요청중이나 의회의 반응이 소극적입니다.

러시아 문제는 아직 국내적 위기라고 하지만 사태가 확산되면 조정자가 없어 문제가 될 겁니다.

그러나 사태가 악화되면 IMF뿐 아니라 G7이 나서서 막을 것으로 봅니다.

▶사회 : 러시아 문제로 인해 아시아와 한국으로 들어올 돈이 적어질 가능성이 있는데 외자도입이 절실한 우리에게는 큰 악재가 되지 않겠습니까.

▶李 : 미국은 한국에 대해 좀 더 두고 보자는 입장입니다.

현대자동차 노사분규와 기아자동차 국제입찰, 서울.제일은행 매각 등 세가지가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어요. 이 문제의 처리방향에 따라 외국인이 한국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느냐 마느냐가 달려 있는 셈이죠. 미묘할 때 대외여건이 불리하게 움직이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사회 :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시각은 아직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데 이처럼 대외여건마저 나빠지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兪 : 외국인은 한국을 두가지 관점에서 보고 있어요. 하나는 구조조정의 성공 여부고 두번째는 한국 경제가 되살아나겠느냐 여부죠. 우리는 아직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외국인이 기대하는 수준까지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하건, 경제를 빨리 회복시키건 하나를 선택해 보여줘야 합니다.

한국은 러시아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돈을 들어올 겁니다.

▶사회 : 러시아 문제가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兪 : 실물경제쪽 영향은 거의 없다고 봐요. 우리가 진출대상으로 삼는 동유럽쪽에 간접적인 영향은 미치겠죠.

▶李 : 우리의 대 러시아 공식수출은 17억달러 정도이나 음성거래는 이보다 더 크다는 얘기가 있어 이 부분에 문제가 있을 수 있죠.

▶兪 : 루블화에 투자했던 국제투기자금이 엔화나 위안화에 입질을 해볼 수도 있으며 이에 따른 교란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회 =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할까요. 우리 힘으로 해결이 어려운 부분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요.

▶李 = 무엇보다 외국 투자자들에게 러시아와 달리 한국은 투자를 해도 안전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게 필요합니다. 또 외자조달 이외에도 국내저축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저축이 많이 되도 돈이 돌지 않기 때문에 신용경색을 풀어 자금순환을 시키는게 급선무 입니다.

▶사회 = 아무리 돈을 풀어도 산업자금화가 안되는 게 현실입니다.

내부적으로는 만기연장 외에 신규 대출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 해외차입이 불가피한데, 러시아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금리가 더 올라가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클 것으로 우려됩니다.

▶兪 = 그렇겠죠. 러시아 사태때문에 조금이라도 위험 가능성이 있는 나라는 신인도가 더 떨어지고 금리는 높아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입니다.

지금같이 한국의 국가신인도가 낮은 상황에서는 신인도가 높은 선도은행을 만들어 이를 통해 외화를 조달하자는 것이지요.

▶李 = 우리가 구조조정을 하는데 고통이 크다고 하면 외국인들은 두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하나는 개혁하기 싫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이 그 정도로 어려운 줄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사회 = 외환정책은 어떻습니까. 4백억달러를 넘은 외환보유고를 놓고 너무 많다, 그렇지 않다는 논란이 있습니다.

또 환율 적정수준에 대한 논란도 있는데 어느 정도가 적정하다고 보십니까.

▶李 = 종전에는 '외환보유고는 연간수입의 3개월치' 가 적정하다고 했으나 지금은 위기상황이므로 단기외채 규모의 외환보유고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환율 역시 수출이 중요한 만큼 엔화 가치 변동에 따라 적절히 평가절하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兪 = 같은 생각입니다. 외환위기를 겪지않은 싱가포르.일본.중국.대만 등은 공교롭게도 8백억달러 이상의 충분한 외환보유고가 있으니 국제투기자금의 공격 여지도 없었다고 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우리도 위기를 벗어날 때까지는 충분히 쌓아놓아야 할 겁니다.

▶사회 = 민간기업들은 러시아 사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兪 = 우리 기업은 동유럽에 자동차.전자등의 분야에 많이 진출해 있는데, 중장기적으로 약간의 타격이 우려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러시아 사태로 인해 입을 직접적인 타격은 크지 않을 것입니다.

▶李 = 단기적 파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에 동감입니다.

러시아에 대한 우리 수출비중은 1.2%로 미미하고 경협관련 채권도 완전히 못받는 것은 아니거든요.

▶사회 = 당장 파장이 크지는 않을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해 지고 이는 결국 한국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텐데요.

▶兪 = 비관적.낙관적 시나리오가 다 있습니다. 주로 원자재를 수출하는 러시아가 덤핑에 나서게 되면 기초원자재 가격은 안정될 것이라 우리에겐 유리할 수도 있겠죠. 비관적으로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엔.위안.루블화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고 국제 경제주체들의 내몫챙기기에 나서면 경색이 올 수도 있습니다.

▶사회 = 도쿄.뉴욕시장의 반응은 아직 차분한 것 같은데요.

▶兪 = 러시아와의 채권이 미미한 등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고 판단한 때문일 겁니다.

▶사회 = 전체적으로 종합해 볼 때 당장 국제자본의 이동이 있을지는 몰라도 세계시장에 큰 영향은 없다는 것 같은데, 그래도 국제 금융시장 동향을 예의주시해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兪 = 그렇습니다. 중국이 무너지면 경합관계인 아시아 전체에 충격이 크겠지만 러시아는 다를 겁니다.

▶李 = 러시아 사태의 고리를 러시아 선에서 끊어줘야 합니다. 여기에는 G7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사회 =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정리 = 이재훈.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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