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워크아웃, 회생은 커녕 숨통 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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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살리자는 건지, 죽이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워크아웃 (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선정된 후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 기업회생을 목적으로 도입된 워크아웃이 엉뚱하게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워크아웃 대상 기업은 물론 하청.협력업체 등도 정상적인 영업.생산활동이 안된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대상 기업의 경우 일단 부도위기는 면했지만 주위에서 부정적인 눈으로 보는 바람에 자금사정은 더 어려워지고, 추진중이던 외자유치 상담이 무산된 곳도 있다.

금융기관이나 사채시장 등에서 대상 기업의 어음 할인을 기피해 협력업체들도 피해를 보고 있으며, 이 때문에 협력.하청업체들은 현금 아니면 거래를 피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게다가 은행마다 선정기준이 달라 신뢰성.원칙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특혜시비' 가 불거져 나오는 등 워크아웃이 시작부터 뒤뚱거리고 있다.

◇지정 이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 14개 계열사중 3곳이 워크아웃 대상이 된 S사는 최근 4백여개의 협력업체에 대표 명의로 '워크아웃은 기업을 살리자는 것이므로 안심하고 거래해달라' 는 편지를 보냈다.

대상 지정 이후 협력업체들이 이탈하는가 하면 거래때 현금을 요구하거나 외상금 회수에 나서 이들을 설득하기 위한 것. S사의 한 관계자는 "금융감독위원회가 아무리 기업회생책이라고 강조해도 협력업체나 소비자들이 믿지 않아 큰일" 이라고 말했다.

최근 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외국기업과 계열사.자산 매각 협상을 벌이던 한 업체는 워크아웃 대상이 된 이후 협상상대가 소극적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구조조정 작업에 차질을 빚었다.

K.S사 등 대상 업체 관계자들은 "일단 부채상환 압력은 면했지만 추가대출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진성어음 할인도 제대로 안되는 경우가 많아 자금사정이 악화되고 있다" 고 호소했다.

또 워크아웃이 주거래은행을 중심으로 추진되자 제2, 3금융권 등 후순위 채권자들이 "채권보장이 안될 경우 담보권을 해지해주지 않겠다" 고 나서 해당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청.협력업체 등도 피해 = 워크아웃 대상인 K사의 하청업체인 A사 金모 사장은 "금융기관들이 K사 어음을 할인해주지 않아 자금사정이 더 어려워졌다" 고 하소연했다.

모기업이 워크아웃 대상으로 지정된 후 가중되는 경영압박을 견디다 못해 법정관리를 신청한 K사는 "우리는 상대적으로 건실했는데 금융기관에서 갑자기 자금줄을 죄는 바람에 무척 어려워졌다" 고 말했다.

동종업계 다른 기업들의 불만도 터져나온다. 철강업계의 경우 "가뜩이나 공급과잉 상태인데, 다른 회사들은 비싼 이자를 물면서 장사하는데 유독 일부 경쟁업체에 채권유예 조치를 하는 것은 건실한 기업들에만 부담을 지우는 것" 이라고 지적했다.

◇대상 선정에 원칙이 없다 = 은행마다 선정기준이 제각각이고 일관성이 없어 대상기업의 이미지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지적이 은행권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대상중 몇몇 그룹은 전 계열사의 부채비율이 1천%를 초과해 은행들조차 회생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C은행 관계자는 "조흥은행이 퇴출시키기로 했던 해태제과를 출자전환으로 회생시키기로 하거나 한일은행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한일합섬의 재산보전처분에 동의하는 등 방침에 일관성이 없다 보니 '퇴출과 워크아웃이 뭐가 다르냐' 는 지적이 나온다" 고 지적했다.

◇금감위 입장 = 회생 가능성을 몇가지 경영지표만으로 따지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주거래은행이 해당기업과 협상을 벌여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 금감위 관계자는 "현재 채권금융기관 실사 등 워크아웃 추진 작업이 진행중이며 여기에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다소의 부작용과 동요도 예상할 수 있다" 고 말했다.

◇개선책은 = 전경련측은 "워크아웃이 부실기업 퇴출의 전 단계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면서 "채권금융단의 판단에 따라 실사기간중에도 지속적으로 운영자금을 지원해주고 대내외 홍보를 강화해 오해를 불식해야 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양선희.박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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