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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프락치사건'도화선 정재한은 실존인물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국회프락치사건' 을 촉발시킨 여자 공작원 정재한 (鄭載漢.당시 42세) 은 과연 경찰이 만들어 낸 가공인물이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는 국회프락치사건 첫 공판이 열린 49년 11월 28일 국방경비대법 위반 (이적행위) 으로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실존 인물이었다.

이같은 사실은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가 단독 입수한 '중앙고등군법회의 명령' (제164호 - 49.11.28, 제180호 - 49.12.1) 자료에서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그녀는 공판 사흘 뒤 (12.1) 육군총참모장 대리 신태영 (申泰英) 소장 명의의 사형집행 명령을 받고 그해 12월 6일 총살됐다.

서울대 도서관에서 찾아낸 김호익 (金昊翊) 총경의 수사일기 ( '한국에서 최초로 발생한 국제간첩사건' .49.11.20)에는 체포될 당시 그녀의 사진까지 실려있다.

鄭은 일제 때 직물공장 노동자로 일하다가 광복 후 남로당에 가입, 개성을 거점으로 북한과의 연락임무를 수행하던 특수 공작원. 49년 6월 10일 보따리 장수로 위장, 월북하려다 金총경 등 잠복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은 검거 당시 그녀의 몸 가장 '은밀한 곳' 에서 평양의 박헌영 (朴憲永)에게 보내는 '국회공작보고서' 를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남로당에 포섭된 의원명단이 암호로 기록돼 있었다.

경찰은 이를 단서로 노일환 (盧鎰煥).이문원 (李文源).강욱중 (姜旭中) 등 반민특위 주도 소장파 의원 13명을 체포,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구속 기소했다.

이것이 국회프락치사건의 시발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유력한 증인이 돼야 할 정재한은 변호인들의 거듭된 요청에도 끝내 공판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가공인물일 것' 이라는 의혹은 그래서 나온 것. 이번 군법회의 문서 발굴로 '가공인물설' 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다만 남로당 공작책 정재한과 조작의혹을 받고 있는 국회프락치사건이 어느정도 연관돼 있는지는 여전히 미궁으로 남아 있다.

도진순 (都珍淳.창원대) 교수는 "鄭이 실존인물로 드러난 마당에 당시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그녀를 서둘러 총살한 이유와 비밀문건의 실체 등도 이제는 밝혀져야 한다" 고 주장했다.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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