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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희 기자의 의료현장 ⑦ 메스 대신 기계 잡은 집도의, 로봇 조종하며 암세포 공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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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 나군호 교수(左)가 수술전, 전립선암 환자인 조덕인씨에게 수술 과정을 설명하며 안심시키고 있다.


평상시 혈압이 좀 높은 것 외에는 건강했던 조덕인(71)씨. 지난 4월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전립선암이 의심되는 소견이 나왔다. 전립선암은 혈액에서 전립선 특이항원(PSA)을 검사해 4ng/mL 이하면 정상, 10ng/mL 이상이면 암을 의심한다. 암이 의심되면 조직검사로 암세포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 조씨의 PSA 수치는 4월 8.1ng/mL, 5월 9.1ng/mL, 6월 15ng/mL로 상승하고 있었다. 6월 16일 전립선 조직검사를 시행했고, 암세포가 확인됐다. 6월 29일, 조씨는 로봇 수술을 받기 위해 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에 입원했다.

400명 수술 … 출혈 있지만 수혈 필요는 없어

나군호 교수가 원격조정기 앞에서 손으로 기계를 조작하면서 로봇수술을 하고 있다.

입원 후 MRI 검사를 받아보니 전립선은 47g(정상은 25g)으로 컸고, 암세포가 양쪽 전립선에서 자라고 있었다. 다행히 주변 림프절엔 암세포가 없다. 왼쪽 신장에 지름 8㎝의 물혹도 발견됐다.

“전립선암 2기예요. 수술하면 95% 이상의 확률로 완치됩니다. 수술 후 요실금이 생기지만 환자의 85%는 석 달 이내에, 95% 이상은 6개월 이내에 회복됩니다. 발기력도 1년 이내에 대부분 좋아지고요.” 나 교수가 검사 결과를 조씨에게 설명했다.

조씨는 “3년 전부터 소변을 시원하게 보지 못했습니다. 암 때문이었나봐요?”라고 되묻는다.

“아닙니다. 그건 전립선 비대증 때문에 생긴 증상이에요. 지금 정도의 암 크기면 증상은 없어요. 환자 분은 검강검진을 통해 증상 없을 때 조기 발견한 경우입니다.”(나 교수)

“수술할 때 출혈이 심하다던데….”(조씨)

“최근 제가 로봇 수술한 400여 명의 환자 중엔 수혈을 받은 환자가 없어요. 수술을 하다 보면 출혈은 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나 교수)

입원 3일째인 7월 1일 오전 11시30분, 수술실로 조씨가 들어왔다. 곧 온몸에 각종 모니터 장치가 부착되면서 마취가 시작됐다. 환자가 잠들자 배에는 6개의 구멍이 뚫렸다. 4곳은 로봇 팔이 들어가는 구멍, 2개는 의료진이 직접 기구를 삽입하며 조작할 구멍이다.

로봇 조종하며 “묶으세요, 자르세요” 지시

4개의 팔이 달린 수술용 로봇. 정우주 임상조교수가 나군호 교수의 지시에 따라 모니터를 보면서 수술을 보조하고 있다.

환자 왼쪽에는 수술을 보조하는 의사(정우주 임상조교수)가 기구를 직접 조작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오른쪽 뒤로는 여러 수술 기구가 놓여 있고 그 앞에 간호사가 앉아 나 교수의 지시를 받는다.

하지만 정작 집도의사인 나 교수는 환자와 3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원격조종 장치 앞에 앉는다. 이곳에서 일단 배에 삽입된 카메라를 통해 수술 부위를 확대된 3차원 영상으로 확인한다. 동시에 손으로 기계를 조작해 4개의 로봇 팔을 움직이면서 부지런히 의료진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린다. 로봇 수술이 시작된 것이다.

“묶으세요.” “림프절 자르고···.” “냉동 조직검사 보내세요.”

얼핏 보면 나 교수는 수술을 하는 게 아니라 전자오락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니터를 통해 관찰해 보면 림프절도, 암세포도 모두 제거되고 있다. 또 출혈 부위를 지혈하고 필요할 때마다 실로 꿰매는 작업도 진행된다. 수술은 오후 3시가 채 못 돼서 끝났다. 원래는 이보다 더 일찍 끝나지만 조씨의 경우, 신장의 낭종(물혹)을 제거하느라 1시간이 더 소요됐다.

나 교수는 “물혹 자체는 양성이라 문제되지 않지만 기왕 전립선암 수술을 하는 데다 크기가 커서 장을 누를 수도 있어 이번 기회에 제거했다”고 설명한다.

수술 후 병실로 올라간 조씨는 이후 3일간 특별한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고 4일 퇴원했다.

글=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 사진=강정현 기자

전립선암은
20년 간 환자 20배 늘어 … 김치·토마토·햇볕 가까이 하세요

전립선암은 지난 20년간 국내에서 20배 이상 급증해 현재 남성암 발생 6위다. 동물성 고(高)지방식 섭취는 늘어나고, 채소 등 섬유질 섭취는 줄어든 서구화된 식습관 탓이다.

고령화도 전립선암 증가에 한몫한다. 실제 발생 빈도는 전체 전립선암 환자의 50대 남성 비율이 9.7%, 60∼64세 16.2%, 65∼70세 20.3%로 나이가 들수록 빈발한다. 다행히 전립선암은 ‘착한 암’으로 불릴 정도로 경과가 좋다. 일찍 발견하면 10년 생존율이 80%에 이른다. 물론 늦게 발견해 폐·간·뼈 등 다른 장기에 암세포가 전이됐을 땐 생존율이 1년 전후에 불과하다.

전립선암에 걸리면 소변 보기가 힘들고(배뇨 곤란), 화장실에 자주 가며(빈뇨), 소변을 봐도 시원하지가 않다(잔뇨감). 밤에 오줌이 잦고, 소변을 참지 못하는 절박감, 아랫배 불쾌감 등도 있다. 하지만 이런 증상은 전립선 비대증 때도 나타난다. 즉 증상만으로는 암인지, 전립선비대증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따라서 50세 이후 남성은 조기 검진을 받아야 한다. 가장 간편한 방법이 혈액에서 PSA 수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물론 수치가 높다고 해서 100% 암은 아니다. 확진하려면 암이 의심되는 부위의 조직을 검사해 암세포를 발견해야 한다.

치료는 환자의 상태·나이·병의 진행 정도에 따라 호르몬·수술·방사선 요법을 시행한다. 로봇 수술은 최신 수술법에 해당한다.

전립선암은 식생활을 통한 예방이 강조되는데 김치·된장·간장 등 발효식품, 당근 등 비타민A가 많이 함유된 식품, 살짝 익힌 토마토 등 채식 위주의 한식이 좋다. 또 햇볕을 충분히 쫴 비타민D 합성을 도와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반면 기름진 육류는 전립선암 발생률을 높이므로 가급적 섭취를 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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