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진 유작집 '달팽이 사랑' 서민의 체취 오롯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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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금 우리 나라 호수나 하천에서 잡히는 물고기 중 절반은 블루길이나 배스.초어 등 성질 사납고 우리의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외래종이라는 거야. 이거 심각해! 겉이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하고 독특한 매력을 지닌 우리의 토종 민물고기들이 급속히 사라지는 이 마당에 우리가 관심을 안 기울이면 누가 기울이겠니?" 지난해 봄 34세의 젊은 나이로 타계한 소설가 김소진의 유고작품집 '달팽이 사랑' 이 최근 솔출판사에서 나왔다.

죽기 1년전부터 써놓은 짧은 소설 34편을 동료작가인 아내 함정임씨가 모은 것. 김씨가 타계하자 문단은 크나큰 상실감을 맛보아야 했다. 특히 젊은 소설계는 한국소설의 향방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며 '이제 나는 과연 어떤 소설을 써야할 것인가' 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다.

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온 김씨는 6년여의 짧은 작가생활 동안 10여권의 소설집과 장편소설을 남겼다. 김씨가 문단에 나온 90년대 초 우리 문학은 크게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건전한 사회와 인간성을 향한 리얼리즘은 급속히 퇴조하고 문학은 별 가치 없는 사소한 개인적 세계나 말초적 감각화, 그리고 흥미본위의 대중문학과 서구이론화의 지적 사치로 흘러들고 있었다.

이러한 90년대 김씨는 우리 이웃 서민들의 애환을 따스한 시선으로 깊이 있게 다루었었다. 서민적 언어와 이야기법을 가꾸며 우리 토종소설 지키기에 앞장섰다.

이 책 머리에 실린 '민물고기 전시회' 에서 토종 민물고기를 끝까지 지키려는 주인공 같이. 문학의 존재 이유 혹은 가치에 깊이 뿌리내린 김씨의 이러한 소설적 작업은 문단에 자율적 심판기능으로 작용, 젊은 작가들로 하여금 상업적인, 혹은 허튼 작품 남발을 막게 했다.

여기에 실린 짧은 소설들도 그러한 김씨의 소설적 작업 연장선상에서 읽힐 수 있다. 작가가 살아가며 이래저래 만난 사람들을 따뜻하게 그리며 그들을 더불어 살아야할 우리의 이웃으로 돌려준다.

뿐만 아니라 단편보다도 훨씬 짧은 소설 속에서 순간순간에 느끼는 삶의 의미내지 인간다운 삶은 무엇이어야 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토종 민물고기를 맛있는 매운탕감 정도로만 생각하는 친구들과 민물고기 수집가를 대비하며 결코 져버려서는 안되는 삶의 본질을 보여주는 '민물고기전시회' , 자신을 알아주는 술집 여자에게만 화장실 사용을 허락하는 화장실 앞의 구두미화원 곱사등이의 세상보기를 그린 '꼽추의 사랑' , 결혼까지 약속했다 훌쩍 해외로 떠난 여인에게서 날아든 편지를 받은 한 유부남의 심리를 그린 '떠도는 자의 편지' 등 주위에 흔한 주인공과 이야기를 내세워 우리가 인간이기에 정말 잃어버리지 말고 지켜야할 삶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나중 본격 단편이나 장편의 밑그림을 위한 것일지도 모를 이 짧은 소설들에도 여전히 김씨가 줄기차게 추구해온 서민적 삶의 깊은 의미와 가치가 오롯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형형색색의 빈수레 요란히 광고나발 불며 거드름 떠는 현문단에서 김씨의 부재를 또다시 슬퍼하게 만든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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