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대출 前제일은행 임원에 부실경영 400억 배상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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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소액주주들이 전직 경영진의 부실경영 책임을 물어 국내 처음으로 제기한 주주대표 소송에서 전액 승소했다.

서울지법 민사합의17부 (재판장 全孝淑부장판사) 는 24일 김성필씨 등 제일은행 소액주주 61명이 한보철강 특혜 대출로 은행에 입힌 손해를 배상하라며 제일은행 이철수 (李喆洙).신광식 (申光湜) 전행장 등 당시 이사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원고들이 청구한 4백억원 전액을 배상하라" 며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배상금은 소액주주들이 아닌 은행에 전액 귀속된다. 이번 판결은 부실기업 경영진에 대해 형사상 책임뿐만 아니라 개인재산으로 민사상 배상까지 하라는 것이어서 기업경영 및 은행 대출 관행에 큰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통상 은행업무 종사자들은 기업의 신용.담보력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회수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만 대출해야 한다" 며 "피고들이 재무구조가 취약하고 사업전망이 불투명한 한보철강에 장기간 거액을 대출한 것은 이사로서의 임무를 근본적으로 회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제일은행이 이자 손실 외에 성업공사에 담보채권을 매각하면서 25%를 감액, 모두 2천7백억여원의 원금 손실을 본 만큼 원고들의 청구액 4백억원을 모두 인정하는데 무리가 없다" 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은 우리 법원이 경영진의 부실 경영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소액주주권 (상법 403조) 을 처음 인정한 것으로, 최근 논란이 되는 부실기업주 책임문제와 맞물려 유사한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金씨 등 원고들은 지난해 6월 참여연대에 주식을 위임해 자기자본금이 2천3백40억원인 제일은행 총 주식의 0.5%인 82만주 이상을 확보한 뒤 은행손실액중 일부인 4백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소액주주 대표소송이란 = 일정한 지분을 갖춘 소액주주들이 이사진에 대해 부실경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법상 제도. 상법에는 5%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상장법인에 한해 증권거래법에 정해진 소송제기 요건을 따른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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