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형 미당, 내 선배 미당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예전에 우물은 동네 여론이 만들어지는 장소였다. 물 길러 온 아낙네들 사이에 누가 횡재해서 돈벌었다든지, 누가 누구랑 눈맞아 도망갔다든지 하는 온갖 동네 소문들이 쏟아지고 평가가 이뤄지곤 했다. 형님의 시 ‘姦通事件(간통사건)과 우물’은 이런 현장을 소재로 한 것이다.”

3일 미당 서정주 시인의 동생 서정태 옹이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 『질마재 신화』의 무대인 전북 고창군 진마 마을에서 시에서 다뤄진 마을 사연을 소개하며 웃고 있다. 오른쪽부터 서 옹, 동국대 윤재웅 교수, 서 옹의 구술을 동영상 촬영하는 동국대 방송국 학생. [고창=프리랜서 장정필]


미당 서정주(1915∼2000) 시인의 동생 서정태(86) 옹이 ‘형님의 추억’을 동영상 카메라 앞에서 털어 놓았다. 2∼3일 미당과 자신의 고향이자 미당의 여섯번째 시집 『질마재 신화』의 무대가 된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진마 마을 일대에서다. 서 옹의 구술 장면 녹화는 생전 미당이 교편을 잡았던 동국대 방송반 학생들에 의해 이뤄졌다. 1982~83년, 학부생으로는 마지막으로 미당에게서 문학을 배웠던 이 학교 윤재웅(48) 국어국문과 교수가 주도했다.

3일 윤 교수는 “ 미당의 시편들은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기 때문에 아직도 탐구할 대목이 많은데 미당 개인에 대한 연구는 미진해 서정태 선생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주변 사람의 기억을 수집해 학문 연구의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녹화한 동영상은 비디오 CD로 제작 할 계획이다.

윤 교수는 미국에 있는 미당의 아들들은 물론 생존해 있는 가족과 친인척, 이어령·유종호·황동규씨 등 문단 원로 중 미당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을 만날 생각이다. 서 옹 녹화는 미당의 젊은 시절 복원에 초점이 맞춰졌다. 주민들이 흔히 ‘질마재 마을’로 부르는 진마 마을은 전해 내려오는 풍습·설화·사람 이야기 등이 통째로 미당의 시집 『질마재 신화』의 소재가 된 곳이다. 서 옹은 시 ‘말 피’의 소재가 된 과부의 집을 재현한 ‘도깨비집’ 등 마을 곳곳을 돌며 시집에 나온 시들의 배경을 설명했다.

서 옹은 또 장남으로 알려진 미당에게 어려서 사망한 형이 있었다는 사실, 미당이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일본 유학 여학생과 사랑에 빠져 자신이 연애편지를 심부름했던 일, 징병영장이 나온 자신에게 도망을 권유한 일, 등단 전 미당이 동생들을 재촉해 형제 시집을 세 차례 만든 일 등을 소개했다. 윤 교수는 “평전이나 자서전에도 나오지 않는 내용들”이라고 말했다.

진마 마을이 위치한 선운리는 이웃 송현리와 함께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대상으로 올해 초 선정돼 내년부터 2014년까지 40억원의 예산 지원을 받아 ‘시문학과 농촌이 공존하는 마을’로 개발된다.

고창(전북)=신준봉 기자 , 사진=프리랜서 장정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