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NLL보고 혼란, 국방장관 책임져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서해 북방한계선(NLL) 사태'에 대한 정부 합동조사단(합조단)의 발표 내용을 뒤집은 조영길 국방부 장관의 발언은 충격을 넘어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조 장관은 국회에서 "해군작전사령관은 북측 교신 내용을 상부에 보고하면 사격중지 명령이 올 것을 우려했다"고 밝히는 등 전날 합조단의 발표 내용을 번복했다. '부주의에 의한 판단착오'가 아니라, 고의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이 결재한 내용을 하루 만에 뒤집는 국방부 장관을 보면 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의혹은 합조단이 왜 왜곡된 발표를 했느냐는 점이다. 조 장관의 발언 후 청와대는 '진상을 다 알고 있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청와대와의 조율을 거쳐 그런 발표를 했다는 것 아닌가. 어떻게 이럴 수 있나. 합조단의 발표는 국민을 향해 한 것이지 청와대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합조단 발표로 국민은 '청와대와 군의 갈등이 일단락돼 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국방부 장관이 나서 '사실은 그게 아니고 이것이다'라고 뒤집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국방부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에 밝히려 했다가 시간관계상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해명한 것도 무책임의 극치다.

국민은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지 몰라 답답함과 함께 분노를 느끼고 있다. 따라서 청와대와 조 장관은 이제라도 이번 사태의 배경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처음부터 진상을 제대로 발표하면서 '군의 사기를 고려해 문책을 경감했다'고 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사안을 왜 이렇게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는지 국민 앞에 고백해야 한다. 이것만이 땅에 떨어진 이 정부의 국민 신뢰를 어느 정도나마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격중지 명령을 우려했다'는 해군작전사령관의 판단도 충격적이다. 현장 최고 지휘관이 그런 판단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군의 지휘체계가 엉망이었다는 점이 극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급 장교도 아니고 최고 군 수뇌부 간에 이런 불신이 있는 군대에 어떻게 안보를 맡길 수 있겠는가. 청와대와 군은 안보문제를 놓고 이런 난맥상을 보인 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국방부 장관은 특히 이번 일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군 수뇌부를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한다. 이렇게 군과 청와대, 일선 현장과 중간 지휘부, 군 최고 지휘부와 차급 지휘부 간의 불신을 그대로 둘 수 없다. 정치에, 비뚤어진 여론에 눈치 보지 않고 군이 국방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