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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 부르는 쾌락, 마이클 잭슨도 읽었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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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호 08면

1 세속적 쾌락의 동산-삼면화 (1503~1504), 보슈 작, 프라도 박물관, 마드리드 2 세속적 쾌락의 동산 중앙 패널 부분 3 세속적 쾌락의 동산 오른쪽 지옥 패널 부분

지난주 세상을 떠난 마이클 잭슨의 전설적인 음반 중 가장 역사적인 의의가 큰 앨범은 ‘스릴러(1982)’겠지만 내게 가장 특별한 앨범은 ‘데인저러스’(1991·사진 4)다. 잭슨의 음악을 진지하게 들어 보기 시작한 첫 음반이고, 또 그 음반 커버로 인해 히에로니무스 보슈(1450~1516)라는 기괴한 북유럽 르네상스 화가에게 관심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문소영 기자의 대중문화 속 명화 코드 : 보슈의 그로테스크한 상상

이 음반의 현란하고 키치적인 커버 전체는 미국 현대화가 마크 라이던이 제작했는데, 옛 명화들이 숨은 그림 찾기 퍼즐처럼 여기저기 들어 있다. 그중 하나가 오른쪽 새머리 여왕의 몸에 자궁처럼 연결된 투명한 공 속의 남녀인데, 처음 봤을 때 어딘지 불쾌하면서도 흥미로운 그림이었다. 알고 보니 이 부분은 미술사상 가장 수수께끼 같은 그림일 보슈의 대작 ‘세속적 쾌락의 동산’(1503~1504·사진1)에서 따온 것이었다.

4 마이클 잭슨의 ‘데인저러스’ 앨범 커버

보슈의 작품 전체를 보면 기이한 형태의 건축물들이 서 있는 강을 뒤로하고 벌거벗은 수많은 남녀가 과일을 먹거나, 애정 행각을 벌이거나, 커다란 동물들과 어울려 놀고 있다. ‘데인저러스’ 음반에 인용된 부분은 그림 왼쪽 아래에 있는데(사진 2), 물에 떠 있는 외계 식물체 같은 것에 액체 방울인지 유리알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달려 있고 그 속에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앉아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 걸까?
보슈의 그림은 워낙 난해해 해석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해석은 이것이 “즐거움은 유리처럼 깨지기 쉽다”는 플랑드르 지방의 옛 속담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투명한 공에는 이미 금이 가 있다. 즉, 저 남녀는 연애의 즐거움에 도취되어 바깥 세상과 차단돼 있지만, 그 즐거움의 세계는 금방이라도 산산조각 날 수 있는 연약한 것이고, 그 세계가 깨질 때 저들은 그 여파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루트비히 폰 발다스를 포함한 많은 미술사가는 ‘세속적 쾌락의 동산’ 전체가 파멸에 이르는 위험한 쾌락, 특히 성적인 쾌락을 상징하고 경고하는 것이라고 본다. 여기에 인간들과 어울려 있는 귀여운 동물들은 사실 악마가 변신한 것이다. 이 동물들은 인간들이 딸기와 포도 같은 과일을 탐닉하도록 부추기는데, 이런 과일들은 욕망과 쾌락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5 딥퍼플의 ‘딥퍼플’ 앨범 커버

이런 견해는 ‘세속적 쾌락의 동산’이 삼면화(triptych)의 가운데 패널이라는 점에 근거를 두고 있다. 왼쪽 패널은 태초의 낙원인 에덴 동산에서 신이 막 창조한 최초의 여성 이브를 최초의 남성 아담에게 소개해 주는 장면이다. 여기서 아담과 이브는 아직 원죄를 저지르지 않은 순진무구한 상태이고 이들의 결합은 신이 주선하고 축복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퇴폐적인 것이 아닌 생산적인 것이다.

반면 오른쪽 패널은 지옥에서 인간들이 그들이 저지른 죄악에 관해 온갖 엽기적인 방법으로 벌을 받고 있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가운데 패널은 인간들이 현세에서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 장면, 특히 비생산적이고 오로지 쾌락만을 위한 성행위에 탐닉하는 장면이어야 논리에 맞는다는 것이다. 이 동산은 언뜻 밝고 쾌활한 듯하지만 세부를 들여다보면 기괴하기 짝이 없는 거짓 낙원인 셈이다.

그러나 빌헬름 프랑거 등 몇몇 미술사가는 중앙 패널이 병적이고 타락한 성적 쾌락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원죄를 짓기 이전의 아담과 이브 같은 순진무구하고 건강한 성생활과 자연친화적인 삶을 묘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이 삼면화는 아담파(Adamites)의 주문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중세의 히피라고 할 만한 이들은 에덴 동산으로 돌아가자면서 나체 공동체를 건설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반대 해석이 나오는 그 애매모호함이, 기발하고 그로테스크한 디테일과 함께 후대의 예술가들을 매혹시키는 모양이다. 보슈의 ‘세속적 쾌락의 동산’은 마이클 잭슨뿐 아니라 다른 여러 뮤지션의 음반 커버는 물론 영화 주제로도 인용되었다. 가운데 패널 못지않게 인기가 많은 것이 오른쪽 패널의 지옥도인데, 명 록밴드 딥퍼플이 1969년도 앨범 ‘딥퍼플’에서 이 그림을 인용하기도 했다(사진 5).

이 지옥도에서 특히 재미있는 것은 옥좌에 앉아 죄인들을 집어삼키고 다시 배설하는 악마 옆으로 음악가들을 위한 형장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사진 3). 경건한 음악으로 정신을 고양하는 대신 감각적인 음악으로 사람들의 쾌락에만 봉사한 음악가들은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일까? 하지만 죄에 비해 형벌이 참 잔인하다. 하프 연주자는 하프에 몸이 꿰이고, 북 연주자는 북 속에 갇혀 악마에게 두들겨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비참해 보이는 건 피리에 똥침을 당하고 있는 연주자다. 보슈는 사디스트였던 것일까.

미술사가들은 보슈의 작품이 개인적인 광기의 산물이 아니라 당대의 종교적·민속적 상징체계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 말은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 디테일의 기괴한 상상력과 짓궂은 취향은 분명 보슈의 독창성이고 이것이 현대의 예술가들을 끊임없이 매혹하는 것이리라.



중앙데일리 경제산업팀 기자. 일상 속에서 명화 이야기를 찾는 것이 큰 즐거움이며, 관련 저술과 강의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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