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발언 계기 정리해고 빨라지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재계는 "노동계도 정리해고를 수용해야 한다" 는 김대중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정리해고와 관련해 계속돼온 혼선이 일단락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재계는 그동안 정리해고 관련 제도를 도입해 기업 구조조정과 외자유치를 독려하면서도 막상 정리해고를 하려면 '고용안정' 을 이유로 가로막아온 정부의 태도에 불신을 품어왔다.

기업 구조조정을 단기간에 마무리하고 외국투자자들을 끌어들이려면 경우에 따라 정리해고가 불가피한 데도 정부의 태도가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눈치를 살피느라 구조조정을 질질 끌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 쪽에서는 정리해고제도 도입 초기에 "한꺼번에 30% 이상 해고할 경우 불법 여부를 조사하겠다" 고 밝힌 바 있고 지난달 55개 퇴출기업 선정 직후에도 "퇴출기업 직원의 90%가 인수기업에서 고용을 승계하게 될 것" 이라고 했다.

이헌재 (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은 5개 퇴출은행 선정 직후 "대리급 이하 직원들은 모두 고용승계될 것" 이라고 '약속' 하기도 했다.

특히 노동부에서는 일부 기업의 해고계획 신고를 서류상 하자를 들어 반려하는 사례도 있었다.

현재 노동부에 정리해고를 신고한 기업은 모두 54개 업체에 6천9백67명. 이 가운데 종업원 1천명 이상 대기업은 현대자동차 등 2개뿐이다.

많은 대기업들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리해고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모난 돌 정맞기' 를 피하기 위해 사태추이를 관망해온 것이다.

이번에 정리해고에 '앞장 선' 현대자동차 역시 노사분규가 확대될 것을 우려해 정리해고 시기를 최대한 늦춰왔다.

경총은 재계의 이같은 기류를 감안해 지난 7일 "퇴출기업.은행의 고용승계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 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아무튼 이번 金대통령의 진일보한 입장 정리로 인해 합법적 정리해고에 대한 '보이지 않는 규제' 는 일단 줄어들 것으로 재계는 기대하고 있다.

경총 관계자는 "대통령의 발언으로 구조조정과 고용안정간 우선 순위가 명확히 매겨진 것" 이라며 "정리해고제도를 둘러싼 혼선은 4천8백명을 감원키로 한 현대자동차의 처리결과에 따라 가닥을 잡아갈 것으로 보인다" 고 전망했다.

이재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