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부담 얼마나 되고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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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금융구조조정과 경기대책이 본격화하면서 국민부담도 크게 늘고 있다.

정부는 구조조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64조원의 공채를, 실물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7조9천억원의 국채를 발행키로 했다.

이에 따른 이자부담만 해도 4인가족 가구당 올해 33만원, 내년에 79만원에 이른다.

게다가 내년에도 세수 (稅收) 부족을 메우기 위해 10조원 규모의 국채발행이 예상되고 있다.

이 경우 이자부담은 가구당 90만원선으로 늘어난다.

한국개발연구원 (KDI) 은 구조조정의 성공을 통해 재정적자구조를 조기에 수습하지 못하면 5년후에는 가구당 1천5백만원씩의 나라빚을 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조조정과 경기.실업대책을 위해 어느 정도 국민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국민부담이 선순환으로 이어져 고통받는 기간을 줄이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이 부담하는 돈이 분명한 원칙아래 효율적으로 쓰여야만 한다.

조윤제 (趙潤濟) 서강대교수는 "무분별한 재정지원은 국민부담만 늘린다" 며 "따라서 정부가 재정지원에 분명한 원칙을 세우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고 지적했다.

◇ 얼마나 필요한가 = 정부는 금융기관 구조조정에 필요한 재원을 64조원 안팎으로 잡고 있다.

그러나 벌써 들어간 돈만 17조5천억원에 이른다.

서울.제일은행에 3조원을 출자했으며, 은행.종금.보증보험사의 부실채권을 사들이는데 7조5천억원을 썼다.

또 문닫은 종금사를 대신해 물어준 고객예금이 5조원에 달했다.

지난해 가을 제일은행과 종금사에는 2조원의 한국은행 특별융자가 나갔다.

정부는 또 동화 등 5개 퇴출은행을 다른 은행에 넘기면서 17조5천억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서울.제일은행을 살리고, 14개 종금사와 5개 은행을 문닫는데 벌써 35조원이 들어가는 셈이다.

앞으로 들어갈 곳은 더 많을 것 같다.

정부가 원칙을 깨고 5개 퇴출은행 신탁상품의 일정부분을 국민 세금으로 메워주기로 한데다 앞으로 문닫게 될 또다른 부실은행과 금고.신협.증권사 등을 대신해 물어줄 예금도 아직 가늠이 안된다.

경기부양에는 올해 6조원이 들어간다.

^중소기업.수출지원 1조원^사회간접자본 (SOC) 투자확대 1조2천억원^실업자대책 1조원 등이다.

◇ 어떻게 조달하나 =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위해 64조원어치 공채를 발행한다.

부실채권정리기금채권은 이미 7조5천억원어치가 발행됐고, 앞으로 25조원어치를 추가 발행한다.

금융기관 증자지원과 예금 대지급에 쓸 예금보험기금채권은 6조5천억원어치가 발행됐고, 앞으로 25조원어치를 발행한다.

경기부양을 위해서도 7조9천억원의 국채를 발행한다.

문제는 이것만으로 막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당장 내년의 세수부족을 메우기 위해 10조원 정도의 국채발행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 국민 부담은 얼마나 되나 = 우선 이자부담이 있다.

이미 발행됐거나 발행이 확정된 국공채와 외평채 40억달러의 이자만 올해 3조6천억원, 내년에는 9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내년에 10조원의 국채가 추가 발행되면 이자만 10조원을 훌쩍 넘는다.

결국 4인가족 가구당 올해 이자부담은 33만원, 내년엔 90만원 안팎에 달할 전망이다.

원금에서도 구멍이 난다.

예컨대 문닫은 금융기관을 대신해 예금을 물어주면 상당부분 나중에 찾기 어렵다. 피부에 더 와닿는 세금도 는다.

8월께 이자소득세를 22%에서 24.2%로 인상하면 1천만원 예금에 대략 3만원 정도의 세금을 더 낸다.

또 휘발유 교통세 인상으로 ℓ당 1백27원이 오른다.

기름 한번 넣는데 40ℓ가 들어간다면 이것만 해도 거의 5천원을 더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이밖에 수치상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담도 있다.

통화증발과 물가오름세, 또는 금리상승 등 국공채의 대량 발행에 따른 영향도 결국은 국민 부담이다.

◇ 달리 방법이 없다 = 국민 부담이 늘면 그만큼 호주머니 사정이 빡빡해진다. 자연히 소비가 위축되고, 내수부진으로 이어진다.

이미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물건이 안팔리면 생산과 투자가 줄고, 장기불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우려된다.

실제로 생산과 소비가 지난 5월 10%와 28%씩 줄었고, 앞으로의 성장잠재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투자는 41%나 감소했다.

최근엔 달러에 대한 원화환율이 급락하면서 수출도 감소세로 돌아서고 있다.

자금이 금융권에서 맴돌면서 금융경색도 여전하다.

부도율은 예년의 두배를 넘는 0.4%대에 머물고 있고 부동산 경기도 침체를 지속, 복합불황 양상마저 띠고 있다.

하지만 실물경제가 엉망이라고 구조조정을 천천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구조조정의 지연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은 채 고통의 시간을 연장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 (KDI) 은 "구조조정을 조속히 마무리해 국민 부담을 선순환으로 이끌면 결국에는 경제도 살고, 국민도 부담을 덜게 될 것" 이라고 지적했다.

◇ 그대신 원칙을 지켜라 = 5개 퇴출은행이 무리하게 판매한 결과 부실해진 신탁상품이나 제2, 3금융권의 고금리까지 국민 부담으로 메워주는 식으로는 곤란하다.

정부가 무분별하게 막아주니까 거액의 위로금까지 챙기는 도덕적 해이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에 대해 재정경제부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 부실한 곳은 예외없이 문을 닫도록 하고, 신탁같은 실적배당 상품은 고객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분명한 원칙을 세우겠다" 고 말했다.

고현곤.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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