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수컷보존의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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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 환경과학자 테오 콜번은 지난 96년 '우리들의 도둑맞은 미래' 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미국 5대호에 유입되는 폴리염화비페닐 (PCB) 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산업폐기물 속에 섞인 PCB는 먼저 플랑크톤에 흡수된다.

플랑크톤은 새우 등 갑각류의 먹이가 되며, 물고기가 갑각류를 잡아먹고, 다시 갈매기가 물고기를 잡아먹는 먹이사슬을 이루면서 체내에 PCB가 축적돼 간다.

이과정에서 PCB의 체내 축적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오니 (汚泥) 를 섭취한 플랑크톤의 PCB농도는 2백50배로 늘어나지만 먹이사슬의 끝인 갈매기에 가면 2천5백만배로 뛴다.

PCB에 오염된 동물은 기형을 일으키거나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5대호 갈매기는 동성 (同性) 끼리 둥지를 틀며, 물고기는 생식기가 아주 작다.

이처럼 동물의 생식기능을 저하시키는 내분비계 교란물질을 환경호르몬이라 부른다.

수컷의 몸속에 들어간 환경호르몬은 정자 (精子) 수를 감소시킨다.

콜번은 환경호르몬이 수컷을 점차 암컷화함으로써 종 (種) 의 소멸을 초래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92년 덴마크에서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1938~90년 사이에 남성의 평균정자수는 ㎖당 1억1천3백만마리에서 6천6백만마리로 감소했다.

일본 도쿄 (東京)에 사는 20대 남성은 평균 정자수가 ㎖당 4천6백만개로 40대 정자수의 55%에 불과하다.

환경호르몬 유발물질은 우리 주위에 널려 있다.

세계야생보호기금 (WWF) 은 지난해 살충제.제초제 등 농약류 43종과 다이옥신.페놀 등 유기화합물 24종 총67종을 환경호르몬 유발물질로 지정했다.

우리나라에서는 WWF가 지정한 환경호르몬 유발물질 가운데 농약 17종, 기타 9종이 별다른 규제 없이 사용되고 있다.

선진국들은환경호르몬을 21세기 최대의 환경재앙으로 지목하고 그에 대한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미국은 95년부터 연구에 착수해 2003년까지 규제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일본도 지난해 정부차원의 기구를 설립했으며, 올해 1백억엔의 특별예산을 배정했다.

9일자 중앙일보에 따르면 농산물과 가공식품을 통한 환경호르몬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환경호르몬 문제는 단순한 식품오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은 물론 미래의 후손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종족보존 차원으로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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