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명퇴금 수술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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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 추진과 별도로 공기업의 명예퇴직금 제도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공기업 스스로는 내부 통제력을 잃었다는 판단에서다.

대대적인 정리해고가 예상되는 민영화에 앞서 미리 제몫을 챙기고 퇴직하자는 집단 이기주의를 차단하자는 것이다.

공기업마다 '명퇴금 잔치' 를 벌이면 다른 기업에도 파급되고, 공기업의 민영화 자체가 위협받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기획예산위원회는 최근 공기업의 거액 명퇴금 지급을 '있을 수 없는 일' 로 보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이 퇴직금 외에 최고 3억원이 넘는 특별위로금을 지급하는 것은 내부 규정이나 노사합의 등 이러 저러한 이유를 든다 해도 국민의 비난을 면할 수 없는 '도덕성 해이' 로 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특히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에 손을 대고 나섰고, 국민이 실업과 감봉의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공기업의 이같은 행위를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김대중대통령이 일부 금융기관의 퇴직금을 둘러싼 파문을 강도높게 질타하고 나선 것도 공기업 명퇴금 제도 손질을 앞당기고 있다.

공기업의 행태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앞으로 퇴출될 민간 금융기관과 기업의 명퇴금 잔치를 막을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공기업 자체의 내부 통제가 허물어진 것도 명퇴금 과잉지급 사태를 불러오고 있다.

기획예산위 조사에 따르면 공기업의 명퇴금은 기본급에다 수당.상여금까지 몽땅 명퇴금 산정 기준으로 계산하는 방식에 따라 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한국전력과 한국도로공사는 상반기중 기본급.수당.상여금을 합한 평균임금 기준으로 30개월치를 명퇴금으로 지급했다.

이 때문에 서로 퇴직하려는 경쟁까지 일고 있다.

한전은 이달중 추가 실시한 명퇴 신청에 7백80명이나 몰리자 이중 3백80명을 선발하기도 했다.

일반퇴직금과 합쳐 최고 4억5천만원을 받는 등 이들에게 모두 1천여억원이 지급될 예정이다.

기본급에 수당을 합한 통상임금에 4~5개월치를 지급하는 민간기업과는 천양지차다.

89명을 명퇴시킨 수출입은행의 경우도 "한국은행 등 다른 금융기관들도 그랬다" 며 평균임금에 2년치 내외를 지급했다.

기본적으로 대리는 6천5백만원, 차장은 8천1백만원, 부장은 1억4천만원씩 지급됐다.

근무 연수가 많은 일부 퇴직자의 명퇴금은 최고 3억원까지 늘어났다.

기획예산위는 국가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이같은 거액의 명퇴금 지급이 이사회 의결을 통과해 지출됐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실태조사를 거쳐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지난 4월 명퇴를 실시한 한국은행의 경우 공기업 못지않게 평균임금에 24~30개월치를 지급했다.

대한투자진흥공사는 기본급에다 30개월치를 지급하고 있는데 수시로 명퇴 신청을 받고 있다.

물론 회사가 망하지 않은 상황에서 퇴직 위로금을 주는 것은 법적 책임이 없다는 것이 법률적 해석이다.

하지만 민간기업이나 공기업 모두 부족한 돈을 결국엔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야 하기 때문에 도덕적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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