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정부-인수은행 갈등 고객만 손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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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8일 동남은행의 한 지점 창구. 신종적립신탁을 해지하려는 고객과 인수업무를 담당한 주택은행 직원간에 승강이가 벌어졌다.

자영업자 金모씨는 "중도해지하면 원금을 준다고 정부가 발표했는데 왜 안주느냐" 고 항의했다.

주택은행 직원은 "문서로 지시받은 바 없고 아직 인수계약이 체결되지도 않아 내줄 수 없다" 고 버텼다.

金씨는 결국 돈을 찾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다.

금융감독위원회가 퇴출은행의 신탁자산에 대한 처리방침을 정한 지 1주일이 됐지만 고객들은 돈을 한푼도 찾지 못하고 있다.

금감위는 지난 2일 ^앞으로 한달간의 실사기간중 중도해지하면 원금을 지급하고^이 기간중 만기상환을 하면 정기예금금리 (연9%) 로^실사기간후에는 운용실적에 따라 배당한다는 원칙을 발표했었다.

그러나 고객들은 아직 중도해지는 물론 만기상환도 못받고 있다.

금감위는 "발표했으니 인수은행이 그에 따라 시행할 것" 이라는 원칙적인 말만 하고 있다.

반면 인수은행 창구직원들은 "신문에서만 봤을 뿐 전혀 모르는 얘기" 라는 반응이다.

인수은행들이 금감위 방침에 따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자산.부채인수 (P&A) 계약이 아직 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감위의 처리방침은 인수계약이 체결된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계약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남의 은행' 돈을 함부로 내줄 수 없다는 것이다.

한미은행 관계자는 "인수계약이 정식으로 체결되고 그 계약서 안에 신탁자산 처리원칙이 명문화돼야 일선창구 직원들이 움직일 수 있다" 고 말했다.

또 인수은행들의 실사작업이 늦어지고 있는 것도 인출을 가로막고 있다.

인수은행들은 "어느 정도의 부실이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덥석 원금을 지급하고 나면 나중에 모자라는 손실을 누가 메워주느냐" 고 반문하고 있다.

이 때문에 퇴출은행의 각 창구에서는 신탁상품의 중도해지나 만기상환을 둘러싼 승강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인수은행 직원들은 "법적 근거가 없어 돈을 내줄 수 없다" 는 말만 되풀이하며 고객들을 되돌려보내고 있다.

이 통에 고객들의 불편과 불만만 자꾸 커지고 있다.

언제라도 정상적인 예금지급이 된다는 금감위의 약속을 믿고 있다 불편을 겪은 데 이어 이번에는 신탁에 넣어둔 돈마저 묶이게 된 것이다.

회사 여윳돈을 대동은행 신종적립신탁에 넣어둔 대구의 한 중소기업 사장은 "이래서야 정부가 약속한 예금자보호인들 어떻게 믿겠느냐" 고 장탄식했다.

한편 지난 4월말 현재 동화.동남.대동.경기.충청 등 5개 퇴출은행의 신탁수신액은 모두 11조2천5백98억원이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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