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업돈 빼돌리기와 탈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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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세청이 고액탈세자 17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탈세는 그것을 획책하고 실행하고 그 돈을 챙긴 사람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죄다.

때문에 기업가든 연예인이든 가릴 것 없이 법의 응분한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이런 처벌 외에도 이런 탈세를 가능케 하는 일반적 환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탈세자 개인을 처벌하는 데 그치고 탈세를 쉽게, 그리고 그다지 죄의식을 가지지 않고 할 수 있게 하는 환경을 고치지 않고서는 탈세를 막기 어렵다.

이번 고발된 탈세자 가운데 부실기업주들이 행한 탈세는 우리나라 탈세 환경의 한 전형 (典型) 을 보여준다.

자신이 대주주이자 회장으로 있는 회사에 투자자산 처분 손실이 있었던 것처럼 위장해 회사가 손해보았다는 그 돈을 자신이 챙겼다는 혐의사실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이것은 회사의 의사결정과 장부처리가 이른바 '오너' 란 적절치 못한 이름이 붙여져 있는 대주주의 전횡속에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기업투명성이 통째로 결여된 환경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하다.

세금만 아니라 다른 주주.채권자.거래기업의 이익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가로챌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대주주를 겸한 경영자뿐만 아니라 대주주 없는 기업의 전문경영자, 또는 이들과 야합한 노동조합까지도 이런 전횡적이고 범죄적인 의사결정의 주인노릇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장은증권의 경우가 그 예다.

기업의 투명성 제고 없이는 이런 범죄를 방지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오너' 경영체제는 지난날 의사결정 과정을 단축하고 단순화시켜 효율적 기업경영에 도움이 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세계화하면서 기업의 내용은 주주.채권자.거래관계자에게 투명화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불투명한 기업이 부실기업과 탈세기업을 함께 겸하는 현상이 앞으로는 더욱 일반화할 가능성도 있다.

이번에 고발된 유명 연예인들의 경우 관행을 이유로 들면서 탈세 사실의 성립을 부인하고 있다.

그 진부는 조사과정에서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투명화는 기업 경영과 회계에 관한 정보의 표준화, 특히 세계적 표준화를 반드시 요구한다.

경영장부의 표준화에는 비록 간략하고 복잡하다는 차이는 있어야 하겠으나 그 골자는 같아야 한다.

연예계의 장부처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것을 알고도 장부를 조작하고 탈세행위를 하는 일도 있겠지만 국세청이 이 표준화를 서릿발처럼 독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탈세행위가 일어나게 돼 있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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