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한급 7년 묵은 한국신 깬‘무거운 샛별’ 안용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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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경기도 포천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한·중·일 국제역도대회 남자 최중량급(105㎏이상) 경기. 안용권(27·국군체육부대)이 인상 206㎏을 신청하자 장내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지난달 26일 열린 한·중·일역도대회 용상경기에서 바벨을 들어올리기 전 숨을 고르고 있는 안용권. [중앙포토]


206㎏은 ‘아시아의 역사(力士)’ 김태현(40·대한역도연맹 사업이사)이 7년 전인 2002년 세웠던 종전 한국기록(205㎏)을 넘어서는 대기록이다. 안용권은 안정된 자세로 바벨을 번쩍 들어올렸다. “안용권 선수가 7년 묵은 한국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기록 성공을 알리는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함께 안용권이 크게 소리를 내지르며 포효했다. 한국 역도 최중량급에 세계 정상급 스타가 또 한 명 탄생했음을 알리는 외침이었다.

◆게으른 천재의 반란=안용권은 자신의 별명을 ‘베짱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내가 생각해도 재능이 있는데, 참 훈련을 안 했다. 대표팀 선배들이 저를 보면서 ‘신은 용권이에게 재능을 줬지만 ‘베짱이’도 함께 주셨다’고 놀렸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이형근 남자 역도대표팀 감독은 안용권이 한국신기록을 들어올리자 붉어지는 눈시울을 감추려 애써 고개를 돌렸다. 그는 “자질이 대단한 선수인데 오랫동안 부상에 시달리느라 꽃을 피우지 못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라고 외쳤다.

안용권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대표로 선발돼 처음으로 메이저 국제무대를 밟았다. “아테네에 갈 때부터 안 좋았던 무릎이 이후 말썽을 부렸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는 다시 마음 먹고 운동을 해보려 했는데 허리가 아팠다”고 아쉬워 했다. 이어 “이번에 한국신기록을 세우고 기쁨보다 후회가 앞섰다. 좀 더 일찍 세울 수도 있는 기록이었는데…”라고 말했다.

◆다이어트 하려 시작한 역도=안용권은 인천남중 1학년 때 역도를 시작했다. 당시 몸무게가 80㎏이나 나가 다이어트를 하려고 시작했다. 그는 “그렇게 역도가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최중량급 선수가 됐으니 다이어트는 완전 실패다”라며 웃었다. 안용권이 생각하는 역도는 ‘힘 쓰는’ 운동이 아니라 ‘머리 쓰는’ 운동이다. 그는 “역도는 순간적인 움직임, 효율적으로 중량을 들기 위한 세세한 자세까지 머릿속에 넣고 감으로 이해해야 한다”면서 “난 어릴 때부터 그런 감이 좋았다. 천재일지도 모른다”면서 크게 웃었다.

게으른 성격 탓에 튀지 못했던 그는 올 2월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한 후 딴 사람이 됐다.

안용권은 “정신무장을 달리 했다고 해야 하나. ‘그분이 오셨다’고 표현하면 맞으려나. 좋은 여건 덕분인지 훈련에 진지하게 임하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 안용권의 기록 향상은 눈이 부시다. 입대 전 인상 202.5㎏, 용상 235㎏이 최고 기록이던 그는 이번 한·중·일 대회에서 인상 206㎏, 용상 250㎏을 들어올렸다. 4개월여 만에 한국 최고는 물론이고 세계대회 입상을 노릴 만한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키 1m88㎝, 몸무게 142㎏의 당당한 체격을 자랑하는 안용권은 균형이 잘 잡힌 몸매와 낙천적인 성격이 큰 장점이다. 잦은 부상 탓에 아직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본 적이 없지만 그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긴장을 덜 하는 편이다. 바벨만 잡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말했다.

◆한국 역도의 남녀 최중량급 석권 꿈=김태현 역도연맹 이사는 안용권이 자신의 한국기록을 깼다는 소식을 듣고 “용상 기록(260㎏)까지 깨면 자비로 순금 메달을 선물하겠다”며 싱글벙글했다. 그는 “용권이가 올해 세계선수권에서 용상과 합계 한국신기록을 모두 깰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이형근 감독 역시 “충분히 세계 정상을 노릴 만하다”고 말했다. 여자부에서 세계 1인자인 장미란(26·고양시청)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 역도가 세계선수권에서 ‘역도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남녀 최중량급을 석권하는 게 꿈이 아니라는 뜻이다.

가호현 대한역도연맹 사무국장은 “역도계에서는 최근 기량이 급성장한 안용권의 등장이 장미란의 존재 만큼이나 대단한 뉴스”라고 말했다. 안용권은 11월 경기도 고양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에 도전한다.


포천=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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