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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낳으면 수당·면세·융자…‘아리안족 늘리기’ 열 올린 나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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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나치 치하에서 자행된 인종 말살정책은 독일 역사에서 가장 암울하고 수치스러운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인종정책의 이름으로 자행된 가공스러운 행위들은 극단적으로 사악한 양상으로 발전했다.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고, ‘바람직하지 않거나’ ‘인종적으로 이질적인’ 범주의 사람들에게는 성적 자유 및 출산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았다. 1934년 1월 1일 이후 인종 및 계급에 따른 강제 불임과 출산 제한은 제반 법령을 통해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아리안족 부부들에게는 다산을 장려했고 아리안족 여성들의 산아 제한 권리를 폐지했다. 낙태는 엄격하게 처벌되었다. 나치는 초창기의 한 법령을 통해 남편이 직장을 가진 기혼여성의 경우 공직 취업을 금지했다. 결혼을 원하는 젊은 남녀에게는 저리의 융자금이 제공되었는데 신부가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전제조건이었다. 아이들이 한 명 태어날 때마다 출산 수당을 지급하는가 하면, 갚아야 할 융자금과 세금을 줄여줬다. 다섯 이상의 자녀를 둔 가정의 경우 세금을 완전 면제해줬는데, 이는 모두 독일제국을 완전히 순수한 새로운 인종으로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정책은 여성을 ‘자식을 낳는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가능했다. 38년 뉘른베르크 대회에서 히틀러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단 한 명의 독일인 여성이라도 전선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나는 독일인 남자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할 것이다. 여성에게는 그들만의 전쟁터가 있다. 그들은 국가를 위해 아들을 내보냄으로써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한다.” 가정주부는 낳는 아이의 수에 따라 다양한 등급의 ‘어머니 십자훈장’을 받았다(사진). 4명 이상의 아이를 낳은 여성은 ‘동메달’, 6명 이상은 ‘은메달’, 8명 이상은 ‘금메달’, 10명 이상은 ‘금+다이아몬드 메달’을 받았다.

시상식은 히틀러의 어머니 생일인 8월 12일에 열렸다. 38년부터 수여된 이 훈장은 41년까지 거의 500만 명이 받았다. 남자들은 농담 삼아 이 훈장을 ‘토끼 훈장’이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지 벌써 4년이 되었지만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국가적 재앙 수준이다. 2016년부터는 일할 수 있는 인구가 감소하리라는 전망이다. 잔인한 인종주의와 여성의 자율성 상실이라는 나치 독일의 행태에 소름이 돋지만, 그들의 출산 장려 정책 자체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상익(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