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나라당 할 말 하려면 제대로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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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나라당이 대여 강경자세로 돌아서고 있다. 박근혜 대표는 "정부가 국가 정체성을 흔드는 상황이 계속되면 야당이 전면전을 선포해야 할 시기가 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안보.경제정책에 대해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이 같은 박 대표의 현실인식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본다. 지금 국민은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나 불안해한다. 가려고 정해놓은 방향은 도대체 있는지, 아니면 바람 부는 대로 물길 닿는 대로 표류하는지 알지 못한다. 심지어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유지될 것인지, 시장경제는 지속될 수 있을지까지 우려한다. 경제부총리가 "진짜 시장경제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하는 판이니 근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위기에서 야당이 입을 닫고 있으면 이는 책임회피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박 대표는 대립각을 세우기에 앞서 먼저 할 일이 있다. 바로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지금의 혼란에는 야당의 잘못도 크다. 국정 난맥상을 눈앞에 두고도 눈 가리고 입 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나라당은 포퓰리즘에 영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안보나 경제의 중요한 현안에 대해 침묵하거나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변죽만 울렸다.

아직도 국민이 한나라당의 당론이 무엇인지 모르는 중대한 현안은 많다. 국가보안법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인지, 북한의 북방한계선(NLL) 침범을 둘러싼 핵심 쟁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입장을 정리했는지 모호하다. 김정일 답방에 대한 당론도 마찬가지다. 이라크 파병과 미군 철수에 관해서도 명쾌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국론 분열 양상을 보이는 수도 이전에 대해서는 아예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겠다'며 버티고 있다.

정책이 없는 반대는 정쟁일 뿐이다. 지금 갈등을 빚고 있는 현안에 대해 한나라당 입장을 먼저 밝히는 것이 순서다. 그 후에 전면전을 하든, 사상전을 하든 선택하라. 기왕에 한나라당이 자세를 고쳐 잡겠다고 했으니 제대로 할 말을 하기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그 주장이 반드시 정책 대안에 담겨 국민에게 제시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