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미 하원도 북한 인권법 통과시켰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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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 하원이 북한의 인권개선과 중국에 있는 탈북자를 위해 매년 260여억원을 지원한다는 '북한 인권법 2004'를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미국이 앞으로 북한체제 문제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신호탄이어서 매우 주목된다. 당장 이 법안은 우리에게도 영향을 줄 것이다. 인도적 지원에도 분배 투명성 확보 등 조건을 까다롭게 붙인데다 이런 규정을 미국이 제3국에 권고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법안이 향후 남북관계는 물론 우리 내부에 미칠 파장에 대비해 면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인권이나 탈북자 문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나 대책에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권은 냉전이 끝난 뒤 국제질서에서 중요한 스탠더드로 기능하고 있다. '인권존중'이냐, '인권탄압'이냐로 선.후진국이 갈리고 있다. 북한의 인권상황은 누구나 아는 것처럼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유엔인권위가 북한인권 결의안을 채택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체제 내부문제에 간섭하고, 자극한다는 등의 이유로 애써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눈을 감아왔다. 그러나 미국의 북한인권법안 통과를 보더라도 우리의 이러한 소극적인 자세는 한계에 왔다.

이제는 우리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문제가 북한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적극 관심을 보여야 할 때가 됐다. 최소한 정치범수용소 문제나 굶주림 문제에 대해선 북한 당국에 할 말은 하고, 촉구할 것은 촉구해야 한다. 또 우리가 도울 것이 있다면 적극 도와야 한다. 탈북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이번에 탈북자 지원에 배당한 240억원은 이 분야 우리 예산의 거의 절반에 해당한다.

북에 대한 인권개선 촉구가 북핵문제 해결에 지장을 준다는 식의 사고로 입을 닫고 있어서는 안 된다. 북핵은 북핵이고, 북한의 인권은 인권이다. 우리가 통일을 지향하는 이유도 바로 같은 민족으로서 인류가 누리는 인권과 자유를 함께 누리자는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