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국축구 다시 시작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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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온 국민들의 기대를 모았던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는 1무2패라는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으로 탈락했다.

4개국으로 편성된 조별 예선에서 1승1무1패를 거둬 사상 최초의 '월드컵 1승' 과 16강 진출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한다는 계획이었으나 현실과 거리가 멀었다.

세계 축구의 높은 벽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월드컵은 한국 축구의 자존심이 여지없이 무너진 대회였지만 교훈으로 삼을 점은 많았다.

한국 축구 전력이 지난번 대회때보다 후퇴한 것이나 차범근 감독의 도중하차는 충격이었다.

또 너무 쉽게 칭찬과 비난에 휩쓸리는 냄비 여론이나 이를 부추기는 매스컴도 반성해야 할 점이 많았다.

우선 예상을 크게 빗나간 형편없는 전적은 한국 축구가 우물안 개구리였음을 여실히 증명한 셈이다.

1승의 제물로 삼겠다던 멕시코와의 첫 게임에서는 1대3으로 패했고 네덜란드와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0대5로 참패했다.

독일.스페인.볼리비아와 한 조를 이뤄 2무1패였던 4년전의 미국 월드컵보다 경기전적이나 게임내용 면에서 훨씬 뒤진 결과로 개인기량도 정신력도 형편없었다.

그래도 마지막 경기인 벨기에와의 게임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후반 내내 우리가 주도권을 가졌고 게임내용도 우세했다.

모든 선수가 하나가 돼 몸을 아끼지 않고 투혼을 불살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한국 축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보는 듯했고 앞선 두 게임에서는 왜 이렇게 싸우지 못했는지 아쉬울 지경이었다.

그동안 한국 축구는 아시아 최강을 자처해 왔지만 프랑스 월드컵을 계기로 이마저 위협받게 됐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일본 축구가 놀라울 만큼 빨리 성장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등 중동국가들도 오일달러를 앞세워 선진축구의 접목에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은 지구촌 모두의 축제고 우리나라는 2002년 월드컵의 주최국이다.

우리집 앞마당에서 남의 나라끼리 잔치를 벌이게 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일본과 공동주최한다는 것도 우리에게는 부담이다.

서울 월드컵을 목표로 한국 축구는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향상은 필수요건이고 축구행정의 쇄신 등 축구인 모두가 환골탈태 (換骨奪胎) 의 각오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

온 국민이 사랑을 갖고 지속적인 지원을 해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의 4년이 짧으면 짧았지 결코 여유있는 기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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