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20년 맞는 부산 소년의집 현악합주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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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1703년 9월 베네치아. 신부 서품을 받았으나 몸이 약해 음악가의 길을 택한 안토니오 비발디 (1678~1741)가 가톨릭 수도원 부설 피에타고아원 음악감독으로 부임해 지휘.작곡.악기관리를 맡아 소녀 고아들로 구성된 현악합주단을 13년간 이끈다.

합주단을 떠난 후에도 평생 이들을 위해 그가 작곡한 음악은 협주곡 6백여곡.

1979년 3월 부산. 당시 부산시향 단원으로 있던 바이올리니스트 안유경 (安裕炅.55.부산여대 객원교수) 씨가 소년의집 현악합주단의 초대 지휘자를 맡는다.

천주교 마리아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소년의집은 일찍 부모를 여의었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부모와 떨어져 사는 청소년들이 내일의 희망을 키워가는 보금자리. 20년째 합주단의 연습지도.지휘.편곡을 맡아오고 있는 安씨를 '한국의 비발디' 라 부르면 어떨까.

부산서구암남동 소년의집 식구 1천3백여명의 '우상' 은 월드컵 대표팀 골키퍼 김병지 선수다.

이곳 부설 기계공고 축구부 출신인 김선수는 휴가 때마다 여기를 방문해 후배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준다.

몇년전부터 김병지 선수 못지 않게 소년의집 식구들이 존경하는 선배가 또 있다.

현악합주단 출신의 유승구 (劉承球.36) 씨. 한양대를 졸업하고 현재 마산시향 악장으로 있는 그가 틈만 나면 후배들의 연습실에 들러 5만원짜리 바이올린으로 밤새 연습하던 옛날 얘기를 들려준다.

올해 창단 20년째를 맞는 소년의집 현악합주단은 모두 70명. 수습 단원을 제외한 50명이 연주에 나선다.

철저하게 본인 희망에 따라 입단하기 때문에 연습에 열성적이다. 수업이 끝나면 매일 오후 5시부터 1시간 연습하고 저녁식사 후에도 오후 7시부터 3시간씩 맹연습에 돌입한다.

국제로타리클럽을 비롯, 1만여명의 후원회원들이 도와주고 있지만 외국산 악기 구입은 꿈도 못 꾼다.

취업을 위한 학과 공부 때문에 음악에 전념할 수는 없지만 매년 음악대학으로 진학하는 졸업생들도 늘어나고 있다.

피에타 고아원 합주단이 베네치아의 명물로 떠오른 것처럼 소년의집 합주단이 부산의 자랑거리로 자리잡을 날도 멀지 않았다.

소년의집 창설자 소 알로이시오 신부님 (92년 선종) 이 미사 음악반주를 위해 창단한 현악합주단은 수녀회 개원식이나 신앙대회 등 교계 행사에서 연주를 맡아오다 91년부터는 서울과 부산에서 한차례씩 음악회를 열고 있다.

올해는 관악기를 보강해 소년의집 관현악단으로 이름을 바꾸고 교향곡 연주에 처음 도전한다.

소년의집 관현악단은 오는 7월7일 부산시민회관 대강당에 이어 13일 서울 연세대 백주년 콘서트홀, 14일 과천시민회관 대극장서 순회공연을 갖는다.

프로그램은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과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푸른 다뉴브강' , 비발디의 '합주협주곡 작품10' 등. 비발디 협주곡에서는 바이올린의 이승주 (충남대 4년).조근제 (마산시향 단원).박진 (동아대 4년).조선중 (경북대 3년) 씨 등 선배들이 협연자로 나선다.

공연문의 부산 051 - 255 - 6789, 서울.과천 02 - 354 - 9957.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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