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내 택시기사들 10년째 학생가장 돕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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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주시내 택시기사들이 10년째 남몰래 학생가장 돕기를 벌이고 있다.

제주시 대림교통에서 근무중이거나 과거 근무했던 택시기사 9명의 모임인 '구인명' (求人命) .회원수에 빗대 '사람을 구하자' 는 뜻이다.

지난 89년 초여름 회원 가운데 한 사람이 운행 도중 "너무도 힘들게 고생하는 어린 가장이 많다" 는 승객의 말을 듣고 며칠 뒤 마음이 맞는 동료 4명과 한국어린이재단 (현 한국복지재단) 제주지부를 찾았다.

재단을 통해 소년.소녀가장 5명의 교통비를 대기 시작했고 그해말 회원이 9명으로 불어나면서 이들은 택시에 아예 성금함을 만들었다.

손님들이 이네들의 뜻에 공감, 보태는 성금이나 건네는 잔돈이 성금함을 채웠다.

일부 회원은 지난 92년까지 3년여 동안 매일아침 하반신마비로 장애의 고통을 겪던 제주시 남녕고 학생가장이었던 김관오 (金寬伍.26) 씨의 등교를 거들었다.

회원들은 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지금은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하는 金씨가 그렇게 대견스러울 수가 없다.

그러나 회원들은 나머지 학생가장들한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꾸준히 모은 성금을 어린이재단에 기탁하는 것으로 얼굴을 감췄다. 하지만 회원들은 올부터 마음을 바꿨다.

도움을 받던 학생들이 진학하거나 취업,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소식조차 제대로 모른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이들이 돌보는 학생들은 소녀가장 3명. 지난 5월엔 함께 야유회를 다녀오는 등 중.고교생인 이들이 제대로 갈 길을 갈 수 있도록 진정한 '가족 (?)' 이 되겠다는 각오다.

제주 = 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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