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이란 선거 합법성에 중대 의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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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란 남성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거리에서 “오바마는 변화를 약속했다. 이란은 변화를 위해 죽어가고 있다”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AFP=연합뉴스]

이란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논란이 2라운드로 들어섰다. 이란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국내 시위는 소강 국면인 반면 국제사회가 본격적으로 이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특히 그동안 자극적인 표현을 자제해 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전례 없이 강경한 어조로 이란을 비난했다. 미 의회는 이날 이란에 대한 새로운 경제 제재 조치를 취했다. 영국은 전날 이란 주재 자국 대사관 직원 가족을 철수시키기로 한 데 이어 이날 런던 주재 이란 외교관 2명을 추방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란이 테헤란 주재 영국 외교관 2명에게 스파이 혐의로 추방 명령을 내린 데 대한 맞대응이다.

이런 가운데 24일 저녁 테헤란 국회의사당 근처에서 시위를 벌이려던 수백 명의 시민이 곤봉과 방패로 무장한 진압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이번 대선과 관련해 어떤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란 정부는 개혁파 시위대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자금이 유입됐다고 주장했다.

◆오바마 “경악과 분노”=오바마는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이란 선거의 합법성에 대한 중대한 의문이 있다”고 밝혔다고 AFP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그는 “미국과 국제사회는 최근 며칠간의 (시위대에 대한) 위협·폭행·투옥 조치에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한다”며 “이 같은 부당 행위를 강력히 비난한다”고 강조했다. 또 시위 도중 총을 맞고 숨진 이란 여대생 네다에 대해선 “가슴이 무너진다(heartbreaking)”고 말했다. “우려 표명”이나 “폭력 자제 요청” 수준에 그쳤던 지금까지의 발언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이에 따라 이란 정부를 자극할 것을 우려해 최대한 대응을 자제해 온 오바마가 입장을 바꾼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미 하원 세출위원회는 “학생들이 살해당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세금이 이란 경제 활성화에 쓰여서는 안 된다”며 이란에 가솔린을 수출하거나 이란의 가솔린 생산을 돕는 기업에 대해 미국 수출입은행의 지원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위축된 반정부 시위=22일 불과 수백 명의 시위대가 모였다가 한 시간 만에 해산된 데 이어 23일에도 큰 시위가 없었다. 개혁파인 미르 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 등과 함께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던 모센 레자이 대선 후보는 이날 헌법수호위원회에 편지를 보내 의혹 조사 요구를 철회했다. 헌법수호위원회는 24일로 예정됐던 부정 의혹에 대한 최종 조사 결과 발표를 5일 뒤로 미뤘다. 그러나 또 다른 후보였던 메디 카루비 전 의회 의장은 “시위 도중 희생된 사람들을 애도하는 집회를 25일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유명한 개혁파 성직자 그랜드 아야톨라 호세인 알리 몬타제리도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25일부터 사흘간 희생자 애도 기간을 갖자”고 촉구했다. 한편 무사비 전 총리 진영은 3쪽짜리 부정선거 사례 보고서를 공개했다. 무사비 측은 ▶선거관리위원회 위원들이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지지자들로 채워졌으며 ▶일련번호가 없는 투표용지가 발견됐고 ▶투표함 봉인 때 각 후보자 측의 참관인이 참석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시신 찾아가려면 총알값 3000달러 내라”=이란 정부가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한 10대 청년의 유가족에게 시신 인도 비용으로 3000달러를 요구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24일 보도했다. 20일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던 테헤란의 한 거리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진 카베 알리포어(19)의 유가족은 이란 당국에 시신 인도를 요구했다가 “총알 사용료로 3000달러를 내라”는 말을 들었다. 유가족이 이를 거부하자 당국은 테헤란에서 장례를 치르지 않는 조건으로 시신을 건넸다고 신문은 전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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